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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Dec 02. 2022

삶이 버퍼링되는 느낌



비오는 날 비를 피하기 위해 전력질주로 뛰면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빠른 속도로 뛰어도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양의 비를 맞게 된다. 물론 아주 천천히 걷는다든지 잠시 서있는 건 제외하고 말이다. 예전에 예능 중에서 여러가지 재밌는 실험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중에 이 주제를 재미있게 봤다. 론 공신력이 있는 실험은 아님이 분명하다.





오래된 거라 실험의 목적은 모르겠지만 그 실험을 계획한 사람도 나처럼 뛰는 게 싫은 사람일 것 같다. 실험 내용은 이랬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같은 양의 비가 올때, 걸어서 갈때와 뛰어서 갈때 맞게 되는 비의 양이 같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달리는 속도에 따라 상체만 젖을 비가 하체까지 분산되어 젖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젖은 것처럼 보일수는 있겠다. 개념은 조금 다르겠지만 질량 보존의 법칙과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같은 비의 양이 있는 거리를 시간의 오차를 배제하고 면적만으로 생각한 결과다.


그 실험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비를 맞은 후 탈수기로 젖은 옷에서 물을 짜내 양을 비교했다. 결과는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실험이지만, 뛰거나 걷거나 어차피 같은 양의 비를 맞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실 비오는 날 한 실험이 아니고 폭우수준의 물을 퍼 부 모두 공평하게 흠뻑 젖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없는 상상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그 프로그램에 나온 작은 단서로 신빙성이 있는지 없는지와 상관없이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나는 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반은 뛰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그 전까지 자주 썼었지만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셈이다. 이제는 뛰거나 걷거나 어차피 같은 양의 비를 맞는다던데? 티비에서 그랬어! 티비에 나온 이야기는 그것의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다 맞는 말 같다.


나는 달리기를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말을 하면 달리기 되게 못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달리기를 꽤나 잘한다. 작은 키에도 특히 단거리를 잘 뛰었다. 학창시절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반에서 2등은 하던 실력이다.


단거리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전력질주를 하다보면 결승선에 도착하기 전, 내 다리의 근육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치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버벅대는 것이 싫다. 내 다리 왜 그러지?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몇번이나 상실감을 겪는다. 그런데 같이 뛰고 있는 친구는 아주 잘 달리는 것 같다. 내 다리 근육만 이렇게 보잘것 없는 걸까? 사실 내 다리만 그런 것인지 다른 사람도 그런 것인지 아직까지도 확인은 해보지 못했다. 나만 그런 거면 나는 보잘것 없는 내 다리 근육을 저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한번 쯤은 물어볼 걸 그랬다. 나는 궁금한게 많은 사람인데 이런 의문을 왜 여태 마음에 품고 살았을까.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도 처럼 속마음은 슬플지도 모르지만, 그걸 확인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혹시 나만 그럴까봐서. 속으로 울고 있는 이에게 실례가 될까봐서 조심스럽다. 그래서 세상에서 나만 슬픈 것처럼 생각이 되기도 한다. 요즘 중년이후 사람들은 거의 친구가 없다는데 나만 외로운 것처럼 느껴지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들 잘 달리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것 을때 내 삶이 버퍼링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 무언가 의문이 드는 일은 부끄럽지만 누군가에게 털어 놔도 괜찮지 않을까. 슬럼프에 빠지기 전에 말이다. 사실 누구나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게 때론 위로가 되지 않던가.


전력질주로 달려도 걷는 것과 같은 비를 맞는다면, 내 다리가 내 맘대로 안되는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면서까지 달릴 필요 있을까. 그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더 많이 젖게 될텐데?


전력질주로 달려 불행을 피할 수 있다면 열심히 달려볼테지만.




"의문이 드는 일을 마음 속에만 간직하면 점점 더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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