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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Dec 17. 2022

불행하지만 행복한 글을 써야 해.


가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생기면 어김없이 글감이 생각나는데 이를테면 오늘 아쉬웠던 점이 있었든, 후회되는 일이 있었든 꼭 하고 싶은 말을 간직해야 마음이 편하다. 요즘에는 꿈을 꾸다 일어나면 생각나는대로 휴대폰에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보면 참 편해졌다. 예전처럼 종이와 펜이 꼭 필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컴퓨터나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나는 생각나는 일이 있으면 자다 일어나서라도 종이와 펜을 찾았었다.


요즘엔 가끔 조상님이 로또 번호를 꿈에서 불러주시면 그 번호를 휴대폰에 고이 적어둔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적어두기엔 휴대폰 만한 게 없다. 어느날엔가 돌아가신 할머니가 불러주신 번호를 휴대폰에 적어두었다가 날이 밝자마자 로또를 구입했다. 번호를 잊지 않고 바로 적어둔 내가 참 기특했다. 언제든 글을 쓸 수 있게 만발의 준비를 갖췄으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기에도 내가 기특했을 거다. 이후 추첨일에 그날 구입한 로또를 맞춰보고 정말 놀라웠다. 세상에. 할머니가 불러주신 번호는 단 하나의 번호도 맞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당첨인 줄 알았다. 사랑하는 할머니! 이럴거면 꿈에 나와서까지 왜 번호를 부르시나요. 할머니, 제발 맞는 번호를 불러주시든지 하늘에서 푹 쉬시든지 하세요.


각설하고 하여간 나는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 없다.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도 늘 옆에 종이와 펜을 준비했었던 걸 보면 틀림없이 나는 작가가 될 상이었다. 나는 작가가 꿈이었다.


어려서는 작가가 꿈이었다해도 별로 쓸게 없었다. 요즘 생각해보면 작가가 되기 위한 기본 덕목은 부족함과 좌절 슬픔 같은 것들이다. 내가 글을 쓰는 주제는 주로 결핍과 불이지 않은가. 좌절과 결핍. 상실의 감정을 알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 이가 많다고 아픔이 많은 건 또 아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아픔이 없는 작가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요즘 대세는 행복하고 긍정적인 글이 아니던가. 행복한 글을 원하는 독자들과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진주를 발견하기 어렵고, 혼을 담아 글을 쓴 작가의 입장에서는 내 글을 읽어줄 소중한 독자와 내 글을 출판해 줄 출판사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출판사는 작가가 없다 하고, 작가는 출판사가 없다 한다. 나는 출판사 관련인이 아니니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독자나 출판사가 원하는 행복하고 긍정적인 글을 쓰고 싶지만,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행복한 글을 쓰며, 더 깊이 생각해보면 행복한 사람이 어떻게 글을 쓸까.


행복한 글을 읽고 싶은 독자들과 결핍된 이들이 주를 이루는 작가들은 마치 창과 방패를 쥐고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한다.


비록 나는 불행하지만 행복한 글을 써야해. 결핍과 상실의 감정으로 행복한 글을 써야만 하는 작가들. 너무 안타깝다. 그냥 로또나 맞았으면 좋겠다.


할머니 좀있다가 꿈에서 뵈요. 오늘은 맞는 숫자 불러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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