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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Jan 04. 2023

공부 알레르기라고 들어보셨나요?



그녀는 공부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되게 웃기죠? 공부 알레르기라니 생각만 해도 우습습니다.


언젠가 '나는 공부 알레르기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친구를 두었더랬죠. 물론 그녀의 공부 알레르기라는 말은 공부를 하기 싫은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아주 건강한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는 공부를 하지 않을 요량으로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가 빗자루를 들고 쫓아오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줄행랑을 쳤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기가 잘못한 걸 아는 참 착한 친구였습니다. 제가 어릴 땐, 청소기뿐 아니라 빗자루도 집집마다 흔히 있었던 때입니다. 덕분에 빗자루를 든 엄마들도 참 흔했습니다.


"공부 알레르기가 뭐야? 하하하 하여튼 재미있다니까?"

그 시절 공부 못하던 내 친구들은 참 유쾌했습니다.


그런데, 공부 알레르기라는 게 정말 있었습니다. 바로 제 딸에게 공부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그녀는 중학교 입학 졸업을 수석으로 한 수재였습니다. 제 친구는 서울대에 입학시키자고 흥분하며 말했죠. 전 당연히 서울대는 아니더라도 스카이나 서성한 정도는 갈 줄 알았습니다. 정말 그 실력이 되는지 확신을 했다기보다는 대학 합격은 운이 50%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실력이 별로 뛰어나 보이지 않는 내 딸이 입학과 졸업을 전교 1등으로 했으니 당연히 그녀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요? 졸업엔 당연히 교육감상을 받았으니 전교 1등 한걸 알겠지만 입학 성적을 어떻게 아냐는 논란이 있을까 봐 미리 말해두자면 제 딸은 배치고사 미지막 세대입니다. 그 당시 입학할 때 배치고사 1등이라 입학하는 아이들 대표로 선서를 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장래가 촉망받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사춘기는 참 무서웠습니다.

중학교 시절만 해도 밤을 새워 강박증이 있는 것처럼 공부를 하던 그녀는 고등학교 입학 후에 180도 변했습니다. 사춘기가 그때 시작 되었거든요. 대부분 아이들이 빠르면 초등 6학년에 시작되어 중 3이면 다 낫는다는 사춘기를 고등학생 때 시작하다니 이건 말도 안 됩니다. 학교를 한해 빨리 보내 사춘기가 늦게 왔나 자책도 했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방황했고 잠시 소강상태였던 제 우울증이 도졌지 뭡니까. 하지만 억지로 공부를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독한 사람도 아니었고요.


아! 사춘기가 공부 알레르기냐고요?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춘기는 언젠가는 지나가니까요.


그녀의 사춘기가 거의 끝나갈 고 2 무렵, 딸에게 본격적으로 공부 알레르기가 발병했습니다. 공부만 하면 온몸이 가렵고 두드러기가 난다며 아마도 공부 알레르기 같다는 그녀에게 전 단순히 그냥 평범한 알레르기일 거라고 농담도 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병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평소에 농담도 잘하지 않는 아이인데 왜 그런지 조금 의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수학학원에만 가면 두드러기가 난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고 1 때까지는 제가 집에서 수학을 가르쳤거든요. 그러니 학원의 수업량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수학이 아닌 다른 과목을 공부해도 두드러기가 났습니다. 그렇게 무려 2년간 두드러기로 고생을 좀 했더랬죠. 아. 진짜인가? 공부 알레르기라는 것이 진짜 있나?


그래도 공부 알레르기는 말도 안 됩니다. 그녀는 알레르기가 10가지도 넘는 사람입니다. 두드러기가 날 때마다 어디서 또 뭘 잘못 먹었겠거니, 학교가 오래되어 곰팡이가 있겠거니 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고양이 알레르기도 있으니 우리 집 고양이 요미 털 때문이었겠거니 그렇게도 생각했습니다. 공부 알레르기라니 말도 안 됩니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요?


그러던 그녀는 얼마 전 수능을 봤습니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해방되는구나 생각했지만, 그녀는 여태껏 봤던 모의고사 중에 가장 낮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아직 대학 합격자 발표는 나지도 않았지만 재수를 한다고 합니다. 이 짓을 한해 더 해야 한다니 가장 걱정되는 건 그녀가 아니라 흥이 많고 수다스러운 아들이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저는 아들과 웃고 떠들면 우울한 마음이 조금은 낫는 것 같거든요. 이로 미루어볼때, 내 걱정은 딸도 아들도 아닌 바로 제 걱정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능 성적을 보니 제가 봐도 제 딸의 맘에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롭게 수능 공부를 시작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능이 끝나고 멀쩡하던 그녀의 몸은 공부를 시작한 그날부터 몸에 두드러기가 한두개 올라오더니 그다음 날엔 온몸에 퍼졌습니다. 정말 공부 알레르기라는 게 있는 걸까요?


스트레스는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몸에 두드러기를 만들어내다뇨. 공부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누워서 유튜브 보며 낄낄대는 걸 보니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겉으로 표현은 못합니다. 세상에서 자식이 젤 무서운 사람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그녀를 보며 왜 부러워지는 걸까요? 제 마음속의 우울도 밖으로 꺼내어 보여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자식의 아픔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니 참 못난 엄마인 것 같습니다. 을 보면 안쓰럽다가도 화가 나고, 화가 나다가도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전 아무래도 자식 알레르기가 있나 봅니다. 알레르기는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라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증상일 뿐이니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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