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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Jul 04. 2023

어떤 분노와 좌절에 대하여



20년 전쯤, 명동에 있는  칼국수 전문점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 식당 빈틈없이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고, 테이블의 간격도 좁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싫지만 나는 칼국수마니아이다. 사람들이 많더라도 칼국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올해 첫 중국냉면


그곳은 여름에는 여름 한정메뉴로 냉면을 팔았는데 내 바로 옆테이블의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냉면에 들어있는 오이를 건져내며 연신 뭐라 중얼대며 한숨을 쉬고 있었고, 그걸 보는 나는 불안해졌다. 그녀 앞에 앉은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 역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분명 주문이 잘못되었든지 오이가 들어가는 걸 모르고 시켰든지, 상황으로 봐선 남자가 잘못한 것 같았지만, 아무리 오이가 싫어도 그렇지 그게 그렇게까지 화날 일인가. 그 당시에 나는 알레르기를 잘 모르던 때라서 그 여자가 이상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무심한 사람이었거나 잘못 나온 주문에도 불구하고 주문을 받은 사람에게 따지지 않고 오이만 건져내고 먹으려던 착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녀는 오이 알레르기가 있었을 거다.


나는 예전엔 참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나는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온갖 알레르기에 시달렸다. 그전엔 알레르기는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알레르기는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발현되는 것이다. 알레르기가 발현되지 않는다고 알레르기가 없는 건 아니다. 람들은 누구나 한두 개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고, 심하지 않을 경우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가진 알레르기를 모를 수도 있다. 병원에서는 검사만으로는 아주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알레르기를 전부 알아낼 수 없다며 스스로 알아내고 조심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발견해 낸 알레르기가 열다섯 가지 정도 된다. 물론 그중에는 검사로 알아낸 것도 있다.


나는 생과일 알레르기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사과와 체리, 생밤, 생고구마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지만, 익혀먹거나, 염장 또는 절임을 하면 알레르기 반응이 약해진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제사상에 놓을 밤을 깎다가 내 입에 넣어 주었는데 나는 그때 생밤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또 언젠가 마트에서 체리를 팔던 아주머니가 맛있다며 입에 넣어준 체리 때문에 알레르기 약을 사 먹은 적도 있다. 그래서 집에는 늘 알레르기 약이 있고 새로운 음식은 밖에서 절대 먹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건강이 약해지고, 새로운 것에 소극적이 된다. 어떤 때에는 마음에도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은 좌절을 용납치 않는다. 사랑에 실패하며 새로운 사랑이 두려워지는 것처럼, 좌절을 반복하며 도전이 두려운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에는 아직 면역력이 부족하다. 나는 점점 더 나약해지고, 두려워진다. 내가 가진 편견 때문에.



유독 일이 많았던 오늘,

사람들에 치이고 실망하면서도 화를 내지 못하고 삭히고만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네요. 내일이면 달라지겠지.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는 것도 다 내 탓이니 말이에요. 기대와 실망은 늘 함께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거 다 아무  일도 아닐겁니다.


오늘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7월 내내 비가 온다고 하니 대비 잘하시고 다들 건강하시길!

이번주 내로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금 많이 늦었네요. 조만간 소식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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