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연 Apr 02. 2024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비 오는 하늘과 맑은 하늘의 경계를 본 적이 있다. 거짓말처럼. 비가 오는 거리를 걷다가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로 들어섰다. 이제 비가 그친 건가. 잠시 생각했지만, 그럴 리 없었다. 내가 서있는 그 경계에서 뒤쪽의 땅은 젖어있었고, 앞쪽의 땅은 말라있었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잖아. 나는 한동안 그 경계에서 배회했다. 오른발은 젖은 땅에 두고 왼발은 마른땅에 두고 헤실헤실 웃어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었다. 이 이야기는 진실이지만, 이 글을 본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 구름의 경계가 그렇게 정확히 날 리가 없다고. 하지만 아주 정확한 그 경계에 서서 나는 오래 그 풍경을 보았다. 이 장면은 내 삶에서 가장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한 십 년 전쯤,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 앞이었다.



어쩌면 그건 내게만 보이는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그 길을 지나면서 비가 그쳤나 보다 생각했을 테고, 다른 어떤 이는 갑자기 비가 온다고 생각했을 거다. 바닥을 유심히 살피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할 그런 날씨, 여우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갑자기 비가 오면 내게만 오는 비인지 궁금해져 하늘을 본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조심조심 운전하는 내 옆으로 어떤 차가 쌩하고 달려간다면 특히 더 하늘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그래 그럴 리 없지. 그런 영화 같은 일이 내게 두 번이나 오진 않을 테지.



영화 트루먼쇼




나는 지금 내게만 내리는 빗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 다들 빠른 걸음으로 활기차게 걷는데 나 혼자 더듬더듬 걷고 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걷고 있다.  조만간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려나. 궁금해지는 밤이다.






이전 21화 수학의 쓸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