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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4. 2024

슬픔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도록



슬픔에 굳은살이  않도록





그 슬픔이 처음인 것처럼



슬플 땐 그 슬픔이 처음인 것처럼 실컷 슬퍼해. 슬픔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도록. 감기에 걸리면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덜 아프겠지만 굳은살은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단단해질 테니까.



_ 슬픔을 외면하면 그 슬픔이 달아날까요.



슬픔을 곁에 두지 않는 방법은 모두 흘려버리는 것뿐이다. 워내슬픔은 다시금 생채기를 낼 테니. 슬픔을 효과적으로 흘려버리는 방법은 때맞춰 우는 것뿐이다.






언젠가 등 뒤에 뾰루지가 났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피부에 가장 좋은 것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그대로 두었다. 저렇게 성을 내다가 곪아서 터지겠지. 그리곤 저절로 아물겠지. 한동안 간지럽고 따끔했던 뾰루지는 어느새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커져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고, 무관심이 답이라 생각했으니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간 피부과에서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때 짜내지 못한 뾰루지는 더 이상 짤 수 없다. 그저 잘 숨기고 사는 방법밖에는.


나란 사람은 이렇게 덩둘하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조금만 빨리 피부과에 갔더라면, 조금만 빨리 알아챘더라면.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다. 어차피 난 이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뭐라 하면 팔랑이며 가볍게 흔들리는 귀를 가진 사람은 주체적으로 살기 어려울 거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우울증은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라면 우울증에 걸렸을 일도 우울감을 가져본 적도 없을 거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타인의 일에 깊게 관여할 수 없다. 의지가 약해서 걸린 것도, 멘이 약해서 걸린 것도, 특별한 시발점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타인의 우울에 대해 원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럼에도 그들은 청하지도 않은 선의를 베푼다. 마치 좋은 사람인 양. 피를 철철 흘리는 자 앞에서도 자신의 손톱밑의 가시가 가장 아픈 법 아니겠나.



그래서 자꾸만 잠이 오는 것도, 자꾸만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몸을 가지고도 살아진다. 내 슬픔과 타인의 슬픔을 비교할 만한 지표가 없으니. 어쩌면 저렇게 예쁘게 웃고 있는 그들이 나보다 더 큰 슬픔을 가졌을지도 모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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