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에 나는 저녁마다 술안주를 만들었다. 연신 맛있다고 추켜세우는 그의 말에 내일은 어떤 안주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도 했다. 나는 고기류를 좋아하지 않고 그나마 먹는 닭고기도 튀긴 것만 먹는다. 하지만 그는 닭볶음탕을 좋아한다. 희박한 확률로 마음에 드는 식재료를 찾아내려 애썼지만, 주로 육식을 좋아하는 그와 채식과 해산물을 좋아하는 내가 함께 먹을 음식을 찾아낸 게 치킨이었다. 하지만 그는 치킨보다는 닭볶음탕을 좋아하고, 외식보다는 집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함께 좋아하는 치킨을 먹는 날은 한 달에 한번 정도였다. 대신 나는 한 달 내내 수육을 만들고 닭볶음탕을 하고, 고기를 구웠다.
아주 어린 시절 나는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을 척척 알아서 해내는 살림꾼이었다. 잔칫날 외할머니 댁에서 쌓인 설거지를 도맡아 하며 착하다는 친척들의 말에 우쭐했지만, 내 착한 척은 거기에서 끝났다. 어른들은 설거지를 하는 나보다 예쁜 언니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사랑받는데 인색했는 아이는, 덜 자란 어른은, 인정받기 위해 애쓸 테지만, 아주 작은 자극에도 큰 상처를 받는다.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는 편이 나았다. 어렸을 때 참 착했다는 말을 하는 엄마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어느 날인가부터 나는 나쁜 아이가 되기로 했다.
청소년 시절의 나는 최대한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그건 늘 실패로 끝났다.도망가려 애쓰면 더 눈에 띄는 법이다. 나는 늘 속도가 다른 사람이라서 어느 때에는 적극적이었다가 어느 때에는 한참을 뒤처졌다. 내게 인간관계에서의 밀당은 전혀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면 난 늘 혼자였다. 시간이 갈수록 처음 만나는 누군가의 앞에선 늘 버벅거리는 게 일상이었고 나는 점점 나만의 세상에 갇혔다.
누군가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 준다면
_ 누군가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 준다면, 나는 그에게 내 영혼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마음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 영혼은 나 스스로 버린 셈이다. 지긋지긋했던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리고 가 준 그에게 난 늘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이성과 감정이 다르다는 것만 빼면 행복한 날들이었다.늘 소극적으로 누가 나를 행복으로 데리고 가줄 거라는 기대감은 늘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