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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Aug 31. 2021

조의

지금 마침 슬럼프가 왔거든요



 그의 부고가 나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돌고 돌았을까. 아마 한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는 아니었을 거다. 그와 나는 서로 일면식이 없다. 서로의 가족이나 친척 지인들까지 우리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사실 그와 나는 SNS에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 외에 서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그의 부고는 내가 꼭 알아야 할 것처럼 나에게 닿았다. 그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주 내 얘기를 했고, 그들은 내가 그의 죽음을 꼭 알아야한다고 했다.



 


 그날 즈음 그는 조금 이상했다. 내가 첫 책을 내기 전부터 나의 1호 팬이라 자처하며, 때가 되면 안부를 묻던 그였지만 어쩐지 생일에 연락이 없었다. 나의 첫 책은 꼭 내 생일날 출간하겠다고 여러 달 기다려서 책이 나온 것도 곁에서 지켜봐주던 그였다. 그저 내 생일을 잊은 것 뿐 일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이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는 새해 인사를 마지막으로 안부를 묻곤 5월에 세상을 등졌다.


 그 3개월의 시간동안 그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얼마나 힘들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질 수 있는지. 늘 밝고 활기차던 그가 말이다. 늘 내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던 그가 말이다.


 괜찮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을 거라고 밖에 말해주지 못했을 내 무심함을 그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 그는 가끔 세상이 힘들다고 했던 것 같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살려달라고.


 그의 부고를 접하고 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형식도 없이 전달된 그의 부고에 난 형식적인 조의를 표한다. 누군가를 맘껏 슬퍼할 겨를 없이 살아남은 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일. 슬픔엔 형식이 없고 참을 수 없을 만한 고통의 시간에도 형식이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그런 것일까. 살아서는 느끼지 못했을 정상적이고 침착함이 유지되어야하는 슬픔. 어느 누구도 같은 죽음은 없으나 어느 누구에게나 같은 슬픔을 요구하는 일. 마음껏 슬퍼해야하는 시간은 언제나 정해져 있으며 그 시간만큼만 슬퍼하고 슬픔을 놓아주는 일련의 과정. 살아남은 자들에게 허락된 슬픔의 시간은 너무 짧다.


 그를 알고 지냈던 지난 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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