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론 과도한 자기연민에 쌓이거나, 때론 나르시스처럼 자신에 대해 과한 자신감을 가진다. 누군가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라는 말을 한다면 이 두 가지 중 하나일거다. 요즘은 SNS에서 디엠을 주고받는 사람이 한정적이고, 개인적인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지 않지만, 예전 초창기에는 디엠이 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일 년 전쯤 디엠 하나를 받았다. 인스타에서는 댓글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도 디엠으로는 그리 친하지 않은 게 보통이다. 그 분과도 그런 관계였었지만, 대뜸 내게 자신의 은사님께서 책을 출간했는데 북 콘서트에 나를 초대하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오실 거죠?’라고 묻는 그에게 ‘당연히 못 간다.’라고 대답한 게 큰 화근이었다. 내가 말한 ‘당연히’라는 말이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그 즈음은 딸의 시험 기간이었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가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것 같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말투에서 꽤나 기분 나쁜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정중했다. 잘 알겠다며 잘 지내라며 인사를 하고 대화를 마쳤다. 내겐 당연히 친하지도 않은 생전 처음 보는 그의 은사님의 책 출간보다 내 딸의 시험이 더 중요하다. 시험 몇 주 전부터 만성 소화불량으로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예민한 아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어떤 작가님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꽤 여러분을 거쳐서 내게 온 이야기였다. 내가 한 ‘당연히’라는 말은 나를 참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자신에게 그럴 수 있냐?’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때, 문득 생각났다. 그 분께 내가 그러면 안 되었다. 책을 출간하기 전에 그에게 헌시를 부탁 했을 때에도, 내게 시집에 들어갈 시를 자신이 읽기 편하게 한글파일이 아니라 pdf파일로 정리해서 보내라고 했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나도 속으로 수없이 그에게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물었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도 pdf파일이 아니라 한글파일로 보내는데 그는 무슨 자신감으로 내게 그런 요구를 했을까? 수없이 물었다. 그러면서 내 자존감은 계속 떨어졌다.
그 이후, 난 그보다 더 많은 팔로워를 모으기 위해 하루에 다섯 개씩의 게시물을 올렸다.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만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열심히 쓰는 것뿐이었다. 그때의 난 그보다 글을 못 쓴다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결국 그 이후에 난 시를 쓰지 않았다. 그의 시에 비해 내 시가 참 형편없어 보이기도 했고, 그와 경쟁을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더 컸다.
이제 다시 시를 쓰고 싶다. 그 이후 일 년 동안이나 쓰지 않았던 시를 말이다. 내가 싸워야할 상대는 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느끼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