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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Sep 09. 2021

면죄부

지금 마침 슬럼프가 왔거든요



 성당엔 아주 예쁜 여자아이가 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동그란 눈매에 예쁘고 단정한 옷차림의 아이이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내게 대모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은 정말 착한 부모에게만 장애아를 허락하신다. 장애아를 낳고 기르는 은총은 정말 착한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이다.”라고. 그 말을 하는 대모님의 표정은 흐뭇과 씁쓸의 중간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대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정말 예쁜 그 아이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문득 지난날이 떠올랐다. 나에게도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었다. 병원에서는 아주 심각한 장애가 있는 이 아이를 낳더라도 하루 이틀 내에 사망할 거라며 낳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훗날 아이를 더 낳는다면 이 아이의 유산 시기는 더 빨라야한다고. 첫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은 탓에 여러 번의 제왕절개가 반복되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땐 그랬다. 우울증이 심각했던 그 시기엔 이런 일이 하느님의 은총이겠거니 했다. 담당의의 ‘어차피’라는 말은 참으로 달콤했다. 그로인해 그 아이를 포기하더라도 내게 죄책감 같은 건 남지 않을 거라고. 마치 이후에 행복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그 아이를 놓아버린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과연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여러 날이 지나서야 내게 죄책감이라는 게 생긴 셈이다. 우울증을 핑계 삼아, 더 그럴듯한 ‘어차피’라는 말을 핑계 삼아 난 그동안 참 행복했었다. 그래서 네가 내게 오는 은총 같은 건 없었노라고... 난 그 아이를 벚꽃으로 기억한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날리던 벚꽃은 참 예뻤다.







벚꽃 _별은 다 아파(시집)


벚꽃 흩날리는 그 계절

이별을 한다면

벚꽃이 미워질까


벚꽃보다 빛나던 우리 사랑이

어느 순간 흐려져

벚꽃 흩날리듯

흩어진 우리 인연


시리고 아프더라

널 닮은 그 꽃이

그래도 예쁘더라

널 닮은 벚꽃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누군가에게 면죄부를 받고 싶어 한다. 타인에게 받은 면죄부는 죄책감을 없애주기에 참으로 달콤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마음속의 죄책감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잘못한 일이어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건, 타인이 해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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