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있어서 다 벗어나고 싶다. 가끔은 기냥 훌쩍 떠나버리고 싶기도 하고,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너무 늦어버린 걸까. 언제부터였을까.
출근길에 정신이 팔렸는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역의 이름. 창밖으로 스치는 생경한 풍경. 그 순간, 짜증보다는 기묘한 해방감이 먼저 들었다. 사실 내 무의식은 목적지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닐까. 이대로 문이 열리지 않고, 어디가 종착역인지도 모른 채, 이 쇳덩이에 실려 영원히 떠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이 지하철이 은하철도였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보 같은 상상을 하면서.
어찌 보면 도망치는 건 익숙해졌지만, 이젠 현실이 무서워서 도망치지 못한다. 발목에 채워진 족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침마다 나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는 그 무게만큼은 선명하다. 남아있는 전세대출,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하는 남은 인생, 그리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 이 무게로는 어디로든 도망치지 못할 거야, 아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족쇄를 벗을 수 없다면, 차라리 중력이 낮아지면 되지 않을까. 달나라처럼 말이야.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출근길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그런 세상. 달의 중력은 지구의 1/6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지금 나를 짓누르는 이 모든 무게도 1/6로 줄어들지 않을까.
전세대출의 무게는 담배값만큼 가벼워지고, 책임져야 할 것들은 무거운 족쇄가 아니라, 그저 내가 지금 들고다니는 에코백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엄마의 기대를 저버릴까 두려운 마음도, 월요일 아침의 절망도, 그 무게가 1/6로 줄어든다면, 나는 조금 더 멀리 뛸 수 있을까. 조금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까.
문과라서 잘은 모른다. 기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지독한 중력의 세상에서, 나는 그저 중력이 약한 행성을 꿈꾸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