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역에 오래 서 있는 사람들
이 회사 사람들은 이곳을 종착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늘 환승역이라고 말한다. 잠깐 머무는 곳, 다음으로 가기 위한 곳. 그렇게 말하면 지금의 상태가 덜 무거워진다. 머무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환승역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표는 이미 샀는데, 열차가 언제 올지는 모르는 사람들. 플랫폼에 서서 계속 전광판만 올려다본다. 출발 예정이라는 글자가 몇 번이나 바뀌는지 세면서.
회사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직 준비를 한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없다. 포트폴리오를 손본다고 말하지만, 늘 ‘요즘 바빠서’라는 말이 붙는다. 면접을 봤다고 했다가, 다시 없던 얘기가 된다. 떠날 마음은 분명한데, 떠나는 동작은 계속 연기된다.
나도 그중 하나다.
사직서를 냈으니까, 나는 이미 플랫폼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수인계도 없고, 다음 사람도 없고, 인사팀의 답장도 없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는 아직 승강장에 들어오지도 못한 건 아닐까. 마음만 먼저 환승해버린 상태.
환승역에 오래 서 있으면, 풍경이 익숙해진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속도, 방송 멘트의 억양, 바닥 타일의 패턴. 처음엔 불안했던 대기 시간이, 나중엔 생활이 된다. 기다림이 루틴이 되고, 계획은 점점 추상화된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일을 한다. 너무 깊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고, 너무 앞서 책임지지도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일이 오면 거절하지는 못한다. 아직 여기 있는 사람이니까. 그 애매한 태도가 하루를 채운다.
가끔은 이런 사람들도 있다.
환승역에 오래 서 있다가,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 표를 환불하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이 회사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몇 달 전 이직 준비를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회식에 다시 나오고, 장기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린다. 환승을 포기한 건지, 연기한 건지는 알 수 없다.
환승역은 원래 잠깐 머무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래 머물수록 나가기 어려워진다. 떠나는 타이밍을 놓치면, 기다림 자체가 목적이 된다.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나는 아직 플랫폼에 서 있다.
사직서를 냈다는 사실이 내 표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열차는 오지 않는다. 전광판은 바뀌고, 안내 방송은 반복된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말.
환승역에 오래 서 있는 사람들은
점점 출발보다 대기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가장 무서운 적이 된다.
나는 오늘도 그곳에 서 있다.
떠날 준비를 한 채로,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