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를 잘 못 읽는다. 정확히 말하면, 읽다가 멈춘다. 책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내용이 낯설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다. 문장을 몇 줄 읽다 보면, 책이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부르는 느낌이 든다. 그때부터 불편해진다.
먼저 말해두자면, 그 책을 쓴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안다. 아무나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방법을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성과를 냈고, 검증을 받았고, 그걸 문장으로 정리해냈다. 꾸준함, 실행력, 집중력. 내가 자주 빠뜨리는 것들을 이미 해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부정하지 않는다. 인정은 한다. 꽤 선명하게.
지하철 환승 통로에 있는 스마트도서관 앞에 서 있으면 가끔 손이 멈춘다. 유리문 너머로 책등이 줄지어 있다. 자기계발서 코너부터 훑는다. 제목들이 크고 단정하다. 아침형 인간, 몰입, 습관, 부. 한 권을 꺼냈다가 다시 넣는다. 다른 걸 집어 든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는다. 활자를 읽는다기보다는, 평가표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결국 손은 옆 칸으로 이동한다. 소설. 제목이 조금 덜 또렷한 쪽. 그제야 책이 가볍게 열린다.
자기계발서는 대체로 친절하다. 지금의 당신도 괜찮지만, 조금만 더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조금만 더’라는 말이 나에게는 위로가 아니라 공격처럼 들린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은, 지금은 덜 낫다는 뜻처럼 들린다. 그 간극이 너무 또렷하다.
읽다 보면 비교가 시작된다. 나는 왜 아직 이 단계지. 왜 이런 기본적인 걸 매번 놓치지. 저자는 이미 통과한 길을 설명하고 있는데, 나는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느낌이다. 동기부여를 주려는 문장인데, 읽는 쪽에서는 자책으로 바뀐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속도가 느려진다. 손끝에 힘이 빠진다.
자기계발서에는 늘 전제가 있다. 노력하면 바뀐다. 태도를 고치면 인생이 달라진다. 습관을 만들면 결과가 따라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더 곤란하다. 반박할 수 없어서. 맞는 말 앞에서는 도망칠 구석이 없다. 나는 그 문장들 앞에서 자꾸 멈춘다. 그 말들이 나를 밀어 올리기보다는, 내가 이미 여러 번 실패해왔다는 기록처럼 느껴져서다.
자기혐오는 은근하다. 대놓고 “나는 별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식이다. 이런 책을 읽을 자격이 있나. 이 조언을 실천할 수 있을까. 어차피 끝까지 못 갈 텐데, 왜 시작하지. 그렇게 책은 다시 제자리에 꽂힌다. 스마트도서관 유리문이 조용히 닫힌다.
자기계발서를 못 읽는 건, 성장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내가 어디까지 못 가는지, 무엇을 반복해서 포기하는지. 그래서 그 책들 앞에 서면 자꾸 한 발 물러선다. 모르는 척이 아니라, 아는 척도 아니라, 그냥 피한다.
스마트도서관에서 소설 쪽으로 손이 가는 것도 비슷하다. 취향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깝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문장들, 읽고 나서 달라질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 그 안에 있으면 당장은 덜 불편하다. 그래서 그쪽으로 간다.
인정은 한다. 그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것도, 내가 지금 멈춰 있다는 것도. 그런데 그 둘을 동시에 견디기에는 아직 체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오늘도 도망친다. 아주 큰 도망은 아니다. 책 한 권 덮는 정도. 코너 하나 옮기는 정도. 그렇게 조금씩.
언젠가는 다시 집어 들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아마 나 자신을 덜 미워하게 됐을 때일 것이다. 아니면 미워한 채로라도 버틸 힘이 생겼을 때. 그 전까지는 이렇게 도망 다닌다. 성장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더 망가지지 않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