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평대생활> 4일째
아침산책에 나섰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또렷했다. 시계가 좋아 멀리까지 보였다. 매번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매번 같지 않은 길이라고 느낀다. 그날의 하늘과 바다가 다르니 새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반복해 디뎌서 축적된 발걸음 수만큼, 어제보다 깊어진 계절만큼 달라진 것임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내가 어제의 나와는 아주 사소하게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 또한 달라진 길이겠다 싶은 것이다.
김녕에 있는 제주 동부보건소에 갔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방역기관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나선 김에 평대보다 규모가 큰 김녕을 걸어서 돌아보고 올 요량이었다. 20분쯤 달려가 내린 정류장 앞이 보건소였다. 검사는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해 10분이 채 안 걸렸다. 보건소 길 건너편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바닷가 쪽을 향해 걸을 생각이었다. 골목을 따라 반듯하게 지어진 집과 돌담이 아닌 시멘트 담벼락이 보이자 돌아서고 말았다. 버스를 타고 평대로 돌아왔다. 평대초등학교 앞 정류장에 내리는데 참 신기하게도 동네가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골목 입구 담벼락에 늘어진 능소화가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았다. 민박집으로 걷는 동안 마을에 포옥 안기는 기분이었다. 그새 익숙해지고 정이 든 건가.
책을 두 페이지쯤 읽었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참지 않고, 꾸벅 졸지 않고, 그냥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 낯선 시간에 잠은 또 얼마만인가. 꼭 신생아가 된 기분이었다. 잠이 올 때 졸지 않고 그냥 자버릴 수 있는 성인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 이런 기가 막힌 잠의 맛을 알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6월 제주의 하늘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듯 하늘빛이 참 좋았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에 익숙하다 보니, 눈 위에 뿌연 꺼풀 하나를 벗겨낸 것 같았다. 들뜨게 하는 빛이요, 색이었다. 이끌리듯 바닷가로 나갔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해변에는 사람들이 늘었다. 모래집을 짓는 아이들의 웃음이 파도소리에 섞였다.
해변을 따라 걸었다. 햇볕이 따가웠다. 수평선은 여전히 또렷했다. 아침과는 또 다른 느낌과 기운의 바다였다. 물 위에 점점이 흩어져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모습도 선명했다. 파도가 잠잠해 소리를 감추자, 어멍들의 움직임이 소리로 들려왔다. 첨벙 대는 소리 사이에 휘파람 소리가 끼어있었다. “휘이~~” “휘우~” “어후~” 깊숙한 곳에서 밀려 나오는 소리였다. 물속에서 참았던 가쁜 숨을 뱉는 ‘숨비소리’였다. 해녀들의 숨은 각자의 고유한 소리로 파도를 타고 들려왔다. 눈을 감고 숨비소리를 들었다.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꾹꾹 눌러놓은 신산한 삶의 서사를 바다 위에서 조금씩 풀어놓는 것 같았다.
숨비소리는 숨을 참아내야 하는 물 안과 숨을 내쉴 수 있는 물 밖의 경계에서 터지는 소리였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소리라고 누군가는 표현을 했다. 소리를 들여다보려는 이에게 비로소 허락되는 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어제와 그제 물가를 지나면서도 듣지 못했던 소리다. 늘 있는 소리였으나,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뭘 잡으세요?” 물질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해녀 어멍에게 물었다.
“요즘 성게 철이에요. 문어도 가끔 잡고요.”
“매일 물에 나가세요?”
“주의보만 없으면 나가야지요. 허허허.”
생업과 이를 위한 출근에는 그게 누구든 짠한 데가 있다.
걷고 돌아와 모래사장에 앉았다. 하늘이 시원했다. 내 안에 어둡고 탁한 기운들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먼 파도를 바라봤다. 갖가지 상념들이 솟았다가 꺼지고, 두서없는 기억과 이미지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밀려온 파도가 발 언저리에 닿으면서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꽤 긴 시간인 것도 같고 아주 짧은 시간인 것도 같은 시간이었다. 바로 직전의 생각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오늘 저녁엔 막걸리 한 잔 할까.’ 저물녘이 가까워서인지 바람이 차가워졌다. 석양이 좋을 것 같았다. 모래를 툭툭 털고 일어나 20분 거리의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와 물을 고르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먹을까 말까 하며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배낭을 메고 걸어갈 길을 생각하면 가짓수와 양을 줄여야 했다. ‘견물생식탐’을 경계했다. 마트를 나서는데 서쪽 하늘이 짙은 주황색 물감으로 뿌려놓은 것처럼 물들었다. (이 부분에서 ‘주황색으로 물들었다’라고 쓰면 봤던 순간의 느낌이 전혀 실리지 않아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이라는 역시 상투적 표현을 끌어들였다) 15년 전쯤 취재차 갔던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목격한 낯선 주황의 석양이 즉시 소환됐다. “아~~” 긴 탄성이 터졌다. 그저께 봤던 해거름도 감동이었으나, 오늘은 새로 경신된 최고의 석양이었다.
걸음이 빨라졌다. 해변에서 저 압도적이고 황홀한 풍광을 담으리라. 둘러멘 가방에서 제주 생막걸리와 삼다수가 출렁댔다. 석양을 담으며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해안까지 2km쯤 될까. 가는 동안에도 행여 하늘빛이 사라질까, 휴대폰과 똑딱이 카메라를 번갈아 들었다. 삐뚤빼뚤 경보를 했다. 가방이 무거워 뛸 수 없었다. 머릿속엔 주황의 하늘과 이를 반영한 바다와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마을이 어우러지는 그림을 이미 그리고 있었다. 흐뭇했다. 마감을 해야 할 사진이 아닌 이상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던 것이다.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석양은 저만치 물러갔고 마지막 붉은 기운 정도 남겨 놓고 있었다. ‘아까비.’ 왜 하필 그 시간에 마트를 갔을까. 왜 하필 막걸리가 생각났을까. 왜 하필 파도가 발끝에 닿아 몸을 일으켰을까. 미련한 아쉬움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내 낯선 질문을 만났다. 석양을 찍기 위해 서둘러 바다로 향한 것이 내게 진짜 즐거움이었을까. 평소에도 찍고 싶어 안달이 나는 장면을 만날 때 나는 신나고 즐겁고 설렌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일이 아닐 경우라는 단서를 붙인다. 그럼에도 꼭 일처럼 급해지고 서두르고 덤벼든다. 한 발짝만 떨어져서 나를 본다면 ‘즐거움’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좋은 풍광은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싶은 설렘이지만, 내겐 조금 병적으로 오는 것 같다. 더 갖춰진 그림을 찾는 건 나의 즐거움보다 기록해 타인에게 보여줄 거리로 생각하는데 익숙해서일 것이다.
만약 내게 기록할 어떠한 도구도 없었다면 온전히 저 매력적인 석양을 즐겼을 것인가. 카메라가 없다는 것이 불안해 안전부절 못해 심장이 뛰고 손일 떨렸을 것인가. 내 깊은 병의 단계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말 것이다.
막걸리가 샌 건지, 차가운 생수 표면의 물이 배어 나왔는지, 땀인지 모를 축축함을 등으로 한껏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걸음을 재촉하며 찍은 석양 사진을 노트북 화면에 띄워놓고 막걸리나 한 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y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