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공유하지말지어라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이 학교로부터 날아왔다. 너희(둘째) 반 아이들 중 한 명에게서 lice(머릿니)가 발견되었으니 학부모들은 각별히 주의를 해달라는 당부의 메일이었다.
허걱!! 머릿니?! 이게 얼마 만에 듣는 단어인가? 내가 초등학교도 아니고 무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어떤 아이에게 머릿니가 발견되었다 해서 그날 저녁 엄마에게 붙들려 참빗으로 머릿속을 말 그대로 '이 잡듯 샅샅이' 찾아냈던 추억이 급 소환되었다.
이제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을 거라고 의심치 않았던 단어, 머릿니가 웬 말. 너무 놀라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머릿니 소식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했다.
슬립오버도 자주 하는 최측근 친구에게서 발견되어 독한 머릿니 샴푸를 하고 몇 시간 방치했다는 일화부터 아이가 머리를 긁적일 때마다 촘촘한 빗으로 수시로 검사한다는 지인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고 보니 까딱 잘 못 관리하면 머릿니가 창궐할 환경이긴 하다. 호주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어찌나 자연친화적인지 맨발로도 잘 다니고(그 발로 집 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님;;) 남자아이들도 곱슬머리에 아무렇게나 단발까지 길러 늘어뜨린 아이들도 많았다. 인형 같은 얼굴의 여자아이들은 머릿결마저 인형 같아 어딘가 엉키고 푸석해서 보여 내가 브러시를 들고 다니며 다 빗어주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햇볕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운동장에서 활동할 때는 챙이 달린 모자가 필수품(유니폼 중 하나)이다. 행여 깜빡하고 모자를 안 챙겨주면 바깥활동을 못하고(알레르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늘에 앉아있어야 아이들이나 구경하는 신세로 전락할 정도.
그런 환경에서 싱가포르의 습하고 더운 날씨와 맞물려 땀으로 범벅한 머리를 모자 속에 그대로 방치하는 상황이라 머릿니가 살기 아주 좋은 환경인 셈이다. 특히 이 모자야말로 머릿니를 옮기는 주요 매체라고도 하니 엄마들 사이에서는 모자를 공유하지 않도록 조심시키고 있다. 나도 아이당 각자 모자 2개로 돌려막으며 매일같이 빠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날 오후 동네를 다 뒤져 우리네 참빗다운 것을 찾아 헤매었으나 있을 리가 있나. 이제는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을. 겨우 촘촘한 플라스틱 빗을 사서 아이를 앉혀놓고 머릿속을 헤집었다. 다행히 내 아이는 통과였다. 옆에 있던 첫째 아이도 덩달아 내게 붙잡혀 한참을 머릿속 불심검문을 당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