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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신 Oct 09. 2021

그래도 싱가포르, 오길 잘했어

다행이다 이 시국에 외국에 있다니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2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퍼질지, 또 이만큼 길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입성 초반의 사진을 보면 지금은 어색하기만 한 마스크 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 찍은 일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코로나는 전 세계도 처음이라 확진자 숫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자주 급변하는 코로나 정책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래서 싱가포르에 온 뒤 거의 2년이 다 되도록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시는 부모님께서는 한참 커가는 손주들의 모습이 참 삼삼하실 게다. 같이 사는 무뚝뚝한 아들내미보다는 이것저것 살뜰히 챙겨주는 멀리 사는 딸내미를 내심 그리워하고 계실 게다.


나도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 그리고 한국의 생활이 그립긴 마찬가지다. 특히 어디가 안 좋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병원이 그렇게 아쉽다. 싱가포르는 동네 의원만 가서 연고 하나만 처방받아도 50불, 대형 병원은 보통 200불이 훌쩍 넘어 아프기가 무서울 정도. 

또한 멀쩡하게 한국에 집과 차를 놔두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월세살이와 뚜벅이 생활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가계부를 좀 먹히고 있는, 세계에서 둘째 가면 서운할 정도로 비싼 싱가포르의 물가도 전혀 아름답지 않다.   

무엇보다도 짧은 영어로 모든 것을 소통하기에는 한국처럼 자유롭지 않아 불편하고 갑갑하다. 때로는 제대로 몰라서 당한 은근한 불이익을 감내하는 건 오로지 내 몫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충분히 이겨낼 만큼 나는 아직 싱가포르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향수병이라는 것이 걸려본 적이 없는 나는 '낯선 환경 적응 지수'가 누구보다도 높은 편이다.(아이들도 나를 닮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다행히 외국생활을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다) 

아마도 나를 '거주자'가 아닌 '여행자'라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여행'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어도 그 설레는 단어에서 주는 기분만으로도 채워지는 기쁨이 있지 않은가!


1년 내내(우기, 건기, 미묘한 날씨 변화가 있긴 하지만)의 무거운 적도의 햇살로 기미가 생길까 하는 짜증보다는 언제나 쨍한 날씨로 우울감 따윈 생길 틈이 없어 좋다. 한 번씩 내리는 스콜성 폭우도 한낮의 더위를 싹 씻겨주어 반갑기만 하다. 

아무 때나 콘도에 나가 수영을 할 수도 있고 지근거리에 있는 해변가도 기분 전환에는 그만이다. 특히 주부의 입장에서는 계절별 옷이 필요 없고(그래서 분기별 옷 정리를 안 해도 되는!) 옷차림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사랑한다.


이제껏 총 3번의 물건을 분실한 적이 있는데 모두 멀쩡하게 내 손으로 돌아온 전적이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시민의식도 칭찬할 만하다. 또한 아이들만 그랩에 태워 학교에 보내도 될 만큼 안심할 수 있는 치안 환경과 어디든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 구조도 외국인이 살기에 너무 편리하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이 초미니 나라에서 못 벗어나니 자연스레 싱가포르 구석구석을 더 자세히 알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이다. 

물론 그만큼의 감당해야 하는 대가도 매우 만만치 않지만 적어도 이런 시국에 외국에 있다니, '거주형 여행자' 마인드를 가진 나에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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