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싱가포르에서 집을 구할 때만 하더라도 이곳 지리를 잘 몰라서 그저 아이들 통학이 가까운 곳으로, 매월 몇 천불의 월세를 내고(왠지 생돈 날리는 기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각종 부대시설이 잘 되어 있는 콘도를 찾기에만 급급했다.
물론 한국에서 살던 집과는 비교도 안되게 작아졌지만 입싱 몇 개월동안은 매우 만족스럽게 잘 지냈다.
하지만 예고 없이 들이닥친 코로나로 인해 몇 달간 온라인 수업에 방학, 또다시 락다운 등 수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행동반경이 한창 커지는 아이들과 살고 있는 이 집이 문득 비좁게 느껴졌다.
여기에 싱가포르는 택시만 타면 어디든 30분 내로 갈 수 있는 손바닥권 생활권이지만 무조건 학교 가까운 곳보다는 내 생활 반경 이동이 편리한, 기왕이면 시내 가까운 쪽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점차 늘어났다.
마침 2년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도 돌아왔고 그렇게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첫 이사를 결정했다.
싱가포르도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공급 매물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 월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현재의 월세보다 최소 2-3천은 더 얹어야 우리가 원하는 제대로 된 매물을 검색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새로운 집을 구하고 온갖 업체를 알아보고 짐 정리, 풀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꽤나 많은 신경을 소모하는 과정이었다.
하물며 언어도 깔끔하게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의 이사라니... 설상가상으로하늘길이 막혀(한-싱간 VTL 풀리기 전) 남편도 몇 달째 싱가포르에 못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라 그야말로 혼자 모든 것을 다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곧 눈앞에 닥친 현실에 한가롭게 걱정 따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싱가포르에서의 집 구하기 A~Z
1. 현재 집주인 에이전트에게 이사 여부 통보
나는 따로 부동산 에이전트를 고용하지 않고 프로퍼티 그루(property guru)를 통해 직접 알아봤다. 그래서 내 경우는 집주인-에이전트-세입자 이런식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진다. 보통 싱가포르에서는 집주인을 직접 거치는 법이 없고(계약할 때조차) 집주인이 고용한 에이전트와 소통하게 된다. 주변에 들어보면 까다로운 집주인이나 에이전트도 많다던데 다행히 내 경우는 상식이 통하는 아주 나이스 한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이사 세 달 전에는 알려주는 것이 보통이다.
2. 온라인을 통해 선호하는 집 찾기
여기에서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보통 부동산 사이트에 원하는 지역, 주거형태, 방 개수, 가격대 등을 넣으면 비슷한 매물이 쫙 뜬다. 거기에서 제대로 된 옥석을 가려내기란 순전히 나의 서칭 노가다.
집과 아이들 학교와의 거리(택시 탔을 때 10분 내 갈 수 있는지), 대중교통이 근처에 있는지(버스 탈 때 바로 갈아탈 수 있고 많이 걷지 않는지) 등을 구글 지도를 통해 계산해보면서 1차 거른다. 물론 한 번에 원하는 매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일주일 간격으로 수시로 체크해봐야 한다.
그렇게 걸러진 1차 해당 매물 에이전트들에게 왓츠앱 메시지를 쫙 돌린다. 이때 가족수, 임대기간 등 기본적인 나의 정보를 미리 제공해야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된다. 에이전트에 따라 애완견 유무, 직업, 예산 등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답을 해주기도 하니 무슨 온라인 면접이라도 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도 이미 팔렸다든가(그럼 빨리 매물을 내렸어야지!! 어떤 에이전트들은 아예 답을 하지도 않는 경우도 있음), 누군가 먼저 네고를 하고 있든가, 내가 제공한 정보와 본인들이 원하는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등 반 이상은 허탕을 친다.
3. 본격적인 집 뷰잉, 임장으로 직접 확인
그렇게 반 정도 살아남은 매물들은 에이전트와 약속을 잡고 보러 간다. 기본적으로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지도 않고 제 크기보다 커 보이게 찍은 사진 구도 때문에 직접 실물을 보는 순간 실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집안뿐만 아니라 주거환경, 주변 환경도 제법 중요하다. 한참 공사 중(소음, 먼지 작렬)이라든지, 걷기도 대중교통을 타기도 애매한 거리라면 은근 불편하기 때문에 어렵게 잡은 매물들이 이때 또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4. 100% 완벽한 집은 없다, 느낌이 온다면 빨리 선점해야
어렵게 찾은 매물을 직접 보다 보면 분명 마음이 동하는 한 두 군데는 나오기 마련이다. 이때 과감한 용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예산이 정해진 상황에서 모든 것이 완벽한 꿈의 하우스는 없다. 이것보다 더 좋은 집이 나오겠지 주저하다 매물이 빠지는 경우(현재와 같이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가 있어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이거다 싶다면 과감히 잡아야 한다.
현재 우리 집의 경우, 당시 살고 있던 세입자의 짐이 너무 많고 지저분해서 집에 들어선 첫인상은 참 답답했는데도 이상하게 포근한 감정이 들었다. 특히 빈 집의 형태를 상상하면 꽤 도움이 된다. 이렇게 찜한 곳이 있다면 적어도 1~2주 안에는 계약 의사를 알려줘야 한다. '에이 조금 아쉬운데 조금 더 찾아보자'란 마음이 들긴 하지만 경험상 더 기다려봤자 드라마틱한 집은 더 이상 매물에 올라오지 않았다.
5. 계약서 작성 전 꼼꼼히 체크
계약 의사를 밝히면 1차적으로 가계약서를 쓰고 보통 한 달치의 월세를 계약금으로 지불한다. 이후 2주 안에 특별히 철회할 의향이 없다면 본 계약으로 진행한다.
보통 집 계약서에 명시되는 사항은 특이한 사항은 'Minor repair'로 입주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그전까지 집의 문제가 생기면 100% 집주인 부담)부터는 수리할 상황이 발생하면 최소 본인부담금을 말한다.
새 집이 아니고서야 보통 10년 이상된 콘도에서는 소소한 잔고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때문에 이 금액이 적게 책정될수록 더 유리하다. 요즘에는 이것도 가격이 올라 보통 200 불선이다.
만약 가스레인지가 고장이 나서 300불이 청구되었다면 세입자가 200불을 내고 추가적인 금액 100불은 집주인이 지불하는 식이다. 물론 200불 이하는 100%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하지만 에어컨 고장의 경우 예외적으로 100% 집주인 몫이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집의 상태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보통 이사 나갈 때 처음처럼 원상복구를 해야 하는데 흠집이나 고장이 난 부분은 미리 체크해서 알려줘야 한다.
6. 본격적인 이사 준비, 업체 선정
그다음으로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바로 이사 준비에 따른 여러 업체 선정이다.
이삿짐(전체 포장 or 부분 포장 형태, 박스만 미리 주고 이삿날 짐만 날라주는 형태 대략 3가지로 나뉨), 커튼 클리닝, 입주(전출) 청소, 에어컨 클리닝, 인터넷 이전신고, SP(수도 전기세) 이전신고 등이 기본이다.
보통 계약서에 명시되길, 이사를 나갈 시 커튼 클리닝, 무빙 아웃 클리닝, 에어컨 클리닝(3개월마다 청소한 영수증 필요하며 이사하는 며칠 전 마지막 청소를 해놓아야 함) 이 3가지는 필수로 전문업체의 영수증을 요구한다. 무작정 인터넷을 뒤지기에는 너무 막막하므로 주변의 이사를 해본 지인들의 추천을 받는 것이 가장 시간 절약하는 방법이다. 나의 경우는 전출 청소와 이삿짐 업체를 소개받았는데 청소는 만족스러웠으나 이삿짐의 경우 이삿날 박스가 다 나와봐야(포장은 내가 하고 짐만 나르는 형태) 정확한 금액을 책정할 수 있다고 하여 마지막에 바가지(어쩐지 처음에 너무 싸더라 했음;;)를 씌운 좋지 않은 기억도 있었기에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7. 마지막 숙제 검사 핸드오버, 2개월치 보증금 받아내기
이 모든 것이 어레인지 되었다면 대망의 보증금 돌려받기 코스가 남았다.
이미 카페나 지인들로부터 보증금을 제대로 못 돌려받았다는 후문은 익히 들어서 긴장 100배. 입주기간 내 문제가 없다가 마지막 집안 상태를 체크하면서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서 어떻게든 보증금을 뜯어내려는 악명 높은 집주인도 꽤나 많다는데 어떤 성향의 집주인과 에이전트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이 나뉘는 대목이다.
난 집주인과는 직접 연락을 안 해봤고 에이전트랑만 접선을 해왔다.(보통 이사 나가는 날까지 집주인 얼굴도 모르는 게 대부분) 에이전트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지만 보증금을 받기 전까지 그런 관계도 어떻게 돌변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짐이 다 빠지고 핸드 오버하는 날. 각종 청소 영수증과 함께 일일이 스위치란 스위치를 다 켜보고 꺼보고, 리모컨들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계약서에 명시된 열쇠들은 그대로 있는지 등 에이전트가 매의 눈으로 일일이 체크를 한다.
특히 나는 벽면(보통 싱가포르는 죄다 흰 페인트 벽이다)에 아이들이 그린 미술 작품들을 붙였다 뗀 자국들이 신경 쓰였다. 나름 매직 스펀지로 닦고 지인에게 받은 흰 페인트로 여기저기 메꾸느라 고생했는데 보상이라도 받듯 새로 페인트 칠했냐는 칭찬까지 받았다. 휴~~
다만 변기커버가 한쪽이 헐겁게 떨어진 부분만 지적받아 바꾸는 비용으로 50불 만을 떼이고(?) 보증금 모두를 돌려받았다. 휴!!!! 이 정도면 아주, 매우 선방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집에 들어왔는데 전 집은 1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역시 살아보니 시내 근처는 옳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택시를 타도 부담 없고 바로 집 앞 버스정류장이 있어 이동도 훨씬 편리해졌다.
물론 살다 보니 소소한 문제가 몇 가지 튀어나오긴 하는데 집의 구조와 위치, 쾌적함 등을 따져보면 이런 불편쯤은 아주 귀여울 지경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해외에서 첫 이사라서 걱정했지만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뤄낸 것 같아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