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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의 기술; 갈등을 넘어 성장으로 가는 법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by 약오르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 의약품의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 기관이다. 허가부터 단속, 검사 등 업무 범위가 넓다보니, 소속 공무원은 2천 명이 넘는다. 식품, 의약품, 화장품,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의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공무원들은 국민들이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무원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으로 정부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손끝에 따라 불협화음을 조율하듯, 조직은 소통과 조정, 재구성의 과정을 거쳐 일관된 목소리를 만들어 내야 성공할 수 있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는 변하지 않는 진리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다.



내가 식약처 의약품관리과를 떠나 전보된 세번째 부서는 기획조정실 소속 고객지원과였다. 당시 식약처는 국민들이 안전을 염려하는 식품, 의약품, 화장품과 같은 물품에 대해 청원을 받아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품목군을 수거해 검사하는 “국민청원 안전검사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나는 그 제도 운영을 위해 고객지원과에 신설된 TF팀의 의료제품 담당 팀원으로 근무하게 됐다.


2018년 시행된 “국민청원 안전검사제”의 첫 번째 검사 대상은 "물티슈(화장품)"였다. 어린이가 사용하는 물티슈가 안전한지 식약처가 수거해 검사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었다. 당시 언론을 통해 국민청원 안전검사제 수거검사 대상이 보도되다 보니 아이가 있는 부모들의 관심이 많았고, 검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품질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에 화장품 업계도 새로운 제도가 어떻게 운영될지 촉각을 기울였다. 또한, 어린이가 사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품질 부적합으로 판명된다면 사회적 파급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맞닥뜨렸던 난제는 외부가 아닌 식약처 내부의 갈등이었다. 직원들도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다보니 혼란스러웠는데, 식약처로서도 국민들로부터 검사대상 청원을 받아 대국민 추천, 전문가 심의, 전체 제품 수거, 검사, 결과 공표 등 일련의 과정을 공개하며 진행하는 것은 처음하는 일이었다. 제도 시행에 대비해 시뮬레이션도 거쳤지만 실제 운영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정부기관은 부처 내에서 조직도에 따른 부서 간의 상하관계는 존재하지만 실제는 거의 대등한 입장이다. 공무원은 순환보직되기 때문에 높은 직제의 부서에 있다가 낮은 직제 부서로 옮기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사기업이 부서 간에 칼같은 상하 관계가 있다면 공직은 무딘 편이다. 평등해 보인다는 면에서 신식처럼 보이지만 일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때가 많다.


나는 제도 담당이었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어린이용 물티슈를 하나도 빠짐없이 수거해 시험 검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반면 물품 담당 부서는 현재까지 물티슈의 품질이 문제 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수거검사가 필요치 않다고 주장했다. 모든 어린이용 물티슈 제품을 구매할 경우 예산과 인력이 엄청나게 필요할 것이라면서, 물티슈의 유통경로를 파악하여 실제 제품을 구매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고도 했다. 평가원의 검정 부서도 올해 내 검정결과를 내기에는 연구원이 부족하고 현재도 업무량이 많으므로 추가 인력지원 없이 진행하는 것에는 난색을 표현했다.


물티슈가 청원 대상으로 선정되자마자, 부서 담당자들은 자주 만나 회의를 했다. 하지만 회의를 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서로의 입장만 얘기할 뿐 이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다보니 부서 담당자의 생각이 꼬이고 꼬여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날 선 말이 오가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도 많이 주고받았다.


다행히 국장님들 간에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위에서 먼저 교통정리에 나서 주면서 갈등은 조금씩 조정되기 시작했다. 국장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추진배경과 문제점을 다 꺼내놓고 논의했다.


우리 부서는 물품 담당 부서와 검정 부서 담당자에게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왜 안되는지, 대안은 없는지“를 질문했다. 그리고 우리가 별도로 외부 기관을 통해 확인한 유통 현황, 검정 시간, 비용과 같은 객관적인 자료도 함께 제시했다. 부서 담당자는 처음엔 방어적이었지만 집요한 설득과 논쟁을 거치자 차츰 우리와 생각이 같아졌다.


그리고 부서의 상황을 들어보니 어려움이 이해가 되고 우리 주장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우리 부서는 생산실적 등 식약처 보유자료에 근거해 시중에서 많이 유통되는 품목을 우선해 수거할 수 있도록 지침을 손봤고, 담당부서는 품질 연관성이 큰 검사항목을 선별해 검사함으로써 제한된 인력과 예산으로 수거 검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그해 9월 어린이 물티슈 수거검사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발표되었다. 7월부터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147개 제품을 수거해 검사했고, 세균이나 진균이 검출된 14개 부적합 제품은 빠르게 회수 폐기 조치가 이뤄졌다. 연말에는 행정안전부의 대한민국 정부혁신과제로서 기관 표창을 받았고, 언론사로부터 올해의 정책으로 선정되는 성과도 있었다. 물티슈 다음으로 청원검사 대상이 된 어린이 기저귀, 다이어트 음료 등도 물티슈 사례에 기반해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과 일로 부딪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 업무에 몰두하다 보면 가끔은 그 갈등이 깊어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결하기 어렵게 꼬아 버리기도 한다.


이런 갈등의 해답은 각자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데에 있다. 갈등이 예상되었을 때 대화의 시작은 업무를 추진하게 된 배경과 해결하려는 목표를 공감하고 서로 간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화, 문자부터 존중과 배려를 담으려 노력해야 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기, 자기 말만 하고 끊기, 따지듯 말하기, 말꼬리 잡기는 버려야 할 것들이다.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발전적 논의와 조정을 통해 협업으로 이어진다면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 업무를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담당자라면 갈등으로 인한 긴장감을 잘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깊은 갈등 상황이더라도 일단 긍정적인 제스처나 반응을 보여주고,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함으로써 우호적인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자.


조직은 부서, 그리고 각 담당자 간 관계, 업무의 간섭, 그 속에서 최선의 협업을 찾는 과정이 있어야 성장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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