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을 만드는 작은 습관
2020년 1월 20일, 우리나라에 코로나19 환자가 처음 발생했다.
방역당국은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로 발령하면서 검역을 강화했다. 1월 24일 두 번째 환자가 확인되자 27일 ‘경계’로 상향했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된 2월 23일, 위기경보 단계는 ‘심각’으로 격상됐다.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감염 확산을 막고자 '보건용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그러자 시중에서 보건용 마스크가 품절되고, 공급이 원활치 않다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구 경북 지역 종교 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시작된 2월 중순부터는 마스크 구매 대란이 심해졌다. 언론은 끝없는 마스크 구매 줄 서기를 연일 보도했고, 정부는 마스크 공급 실패가 자칫 방역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공급문제를 해소해야 했다.
당시 나는 바이오정책과에 근무했었는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마스크 담당 부서로 차출되었다. 그 부서에서 보건용 마스크의 공급에 대한 업무를 지원했다. 그날부터 보건용 마스크 수급이 안정된 7월까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일했다. 몸이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로부터 관심을 받았고, 보건용 마스크 공급이라는 목표가 하나씩 달성됨을 실제로 보는 것은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 그리고 우리 기관에서 가장 업무능력이 뛰어나신 두 사무관과 함께 일할 수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당시 시행한 '보건용 마스크 긴급수급조정 조치'는 건국 이래 최초였다. 정부는 제조업체가 보건용 마스크를 공적판매처로 의무 공급하게 하고, 병원과 같은 의료 필수 소요에 우선 사용되도록 했으며, 1인 2매 구매 제한, 요일별 5부제 구매, 중복 구매 확인과 같은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공평한 공급이 가능하게 했다. 식약처는 제조업체에서 생산한 마스크가 소비자까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사무관과 나는 식약처의 공급과 관련한 실무를 담당했다. 매일 마스크 수급 현황을 취합해 보도자료로 배포하고, 매주마다 마스크 공급 현황을 국민께서 알 수 있도록 식약처 고위 공무원이 하는 브리핑을 준비했다. 그리고 국민과 약사들이 마스크 구매 정책을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도록 예상 질의응답을 작성해 배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두 분의 사무관이 일하는 방식을 가깝게 배울 수 있었다.
A 사무관은 감각이 탁월하신 분이었다. 세밀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수시로 윗분과 논의하면서 정책 방향을 조율했다. 최초로 도입한 긴급수급조정 조치로 인해 각 담당자들은 누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했었는데, 사무관은 방향성이 정해지자마자 빠르게 각 담당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고 지시했다. 사무관은 정리가 필요한 세밀한 부분을 캐치해 상급자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했다. 방향제시가 명확한 사무관 덕분에 나는 믿고 일할 수 있었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A 사무관은 그해 정기인사 때 승진을 해 교육을 갔고, 3월부터는 B 사무관과 일하게 되었다.
B 사무관은 보고서로 정평이 난 분이었다. B 사무관이 쓴 보고서는 '잘 쓴 양식'이었고, '모범 사례'였다. 당시 보건용 마스크 긴급수급조정 조치가 시행된 이후였는데, 보건용 마스크 재고 상황에 맞춰 1인당 구매량을 늘리거나 요일별 제한을 해제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했다. 그때마다 사무관은 현황과 개선방안이 담긴 한 장 짜리 보고서를 뚝딱 만들어 냈다. B 사무관이 쓴 보고서는 술술 잘 이해되고 설득력이 있어서인지 상급자의 수정 한번 없이 끝까지 통과했고 관계부처 회의자료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B 사무관과 일하면서 보고서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사무관은 다른 부서의 업무까지 꿰차면서 총괄해 보고하는 것을 선호하셨는데, 나도 자료를 취합하고 보고할 때 배석하면서 업무를 보다 높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은 B 사무관에게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내고 수정하는 과정을 찬찬히 지켜본 적이 있었다. B 사무관은 보고서의 문구를 고치고 나서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수정하고선 커서를 맨 처음에 둔 상태로 저장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아무리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더라도 보고서가 상대방의 보고 의도에 맞게 작성이 되었는지를 살펴본 후 마무리한다는 점이었다.
B 사무관은 보고서가 처음 의도에 맞게 작성한 것인지 반문하고, 본론이 풍성해지도록 배치에 대해 다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논리가 왜곡되지 않도록 내용을 보강하고 이해가 쉽도록 재구성했다. 사무관에게 탈고는 오탈자 수정, 띄어쓰기 오류를 찾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다시 한번 만드는 과정이었다.
정부 조직은 수직적 구조이고, 상명하복의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고 있다. 공무원은 자신이 맡은 업무가 결정권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게 진행되도록 수시로 보고해야 한다. 이런 보고 과정을 통해 정부는 일관되게 정책을 운영할 수 있고, 정책의 공익성도 높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공무원의 보고가 담당자의 창의적 사고를 막는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보고를 통해 거대한 정부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하고 문제 발생 여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장점이 있다.
그래서 공무원은 보고를 잘해야 한다. 보고를 잘하려면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왜 하는지 목적을 분명히 하고,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 생각하면서 업무에 착수하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이고 보고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보고서도 중요하다. 방향이 중요한 보고서라면 중간보고를 통해 현재 흐름과 벗어난 부분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통계나 현황이 중요한 보고라면 숫자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윗사람에게 보고하려면 최소 3~5배의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맡은 업무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상사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 상사가 보고받는 그 찰나의 순간에 물어보는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직원에게 어떻게 중책을 맡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