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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체 말고 모르면 물어보라

by 약오르지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의약품 분야에도 새로운 치료제가 나오고 있다. 기존 의약품이 화학적 합성물로서 몸 안에 들어가 세포나 유전자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세포나 세포 안의 유전자를 투여해 질병을 궁극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의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첨단바이오의약품이 바로 그것이다.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은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분야이다. 우리나라도 일찍부터 제품화에 뛰어들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제약사가 첨단바이오의약품으로 식약처 허가받은 품목은 16개인데, 이는 품목 수로 보면 전 세계 첨단바이오의약품의 1/3 정도다. 식약처로서는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안전 규제를 공고히 하고 외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품질과 효과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법률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에 국회는 2019년 9월 첨단재생의료나 세포 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첨단바이오의약품에 대한 허가와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첨단재생바이오법(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나는 2019년 3월 바이오의약품정책과에 발령받았는데, 이 법률의 하위 법령을 제정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 주석: 국회가 법률을 제개정하면, 정부는 그에 따른 하위법령(대통령령, 부령 총리령, 고시 등)을 제개정하여 실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이제 첨단재생바이오법 전문가는 당신입니다.”

과장은 하위법령을 담당할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내가 전문가라고?’ 하지만, 첨단재생의료나 첨단바이오의약품은 나에게 많이 생소한 분야였다.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에만 하더라도 첨단바이오의약품은 학문적인 연구가 시작되던 때였고, 석사 때도 첨단바이오의약품은 관심이 없었던 분야였다. 병원 근무할 때에도 세포나 유전자 치료를 담당한 경험이 없었고, 주변 약사 친구들도 유독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잘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위 법령 제정을 위해 먼저 법률에서 시행령과 총리령에 위임한 사항을 추려내고, 각 담당 부서에서 담당자를 추천받아 법령 제정에 참여할 TF팀을 구성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TF팀에서 작성한 시행령과 총리령 초안을 취합하는 업무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법률안을 만들려면 세포나 유전자를 잘 이해해야만 했다. 첨단재생의료의 현황을 알아야 했고 치료방식, 세포의 구조 특성과 같은 원료에 대한 지식도 중요했는데, 당시의 나로서는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반면 TF팀 팀원들은 대부분 이 분야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10년 이상 식약처에 근무하면서 효과성과 안전성을 평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분들은 이런 저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궁금한게 있어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걸 물어봐, 말아?’하면서 고민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나는 법률안을 취합했기 때문에 총괄 담당자 자격으로 전문가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대답을 잘 해주는 담당자에게는 중학생이나 할 법한 질문을 쏟아내고 물어본 질문을 또 물어보거나 답변이 이해가 안 된다고 투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에는 스스로 공부했다. 의사들이 찍은 유튜브도 보고, 교양책도 사서 읽었다. 이런 자료 들은 전문가가 자신의 견해를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투로 작성된 것이라서 많은 도움이 됐다. 잘 정리된 영상과 글은 흘러가는 말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어느덧 TF팀의 노력으로 시행령과 총리령의 윤곽이 나오게 되었다. 남은 일은 우리가 만든 하위 법령안을 법제처에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내가 공부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법제처에 하위 법령을 설명하면서 법률의 목적과 이유, 하위 법령의 주요 내용, 미반영 시 문제점을 연결해 설명하니 법제관은 많은 부분을 이해해 주시고 부족한 부분은 즉시 보완을 요청하여 내용을 채울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리고 중의적으로 읽히거나 군더더기 문구는 깔끔하게 수정되었고, 정해진 기한에 맞춰 하위법령을 제정할 수 있었다.


하위 법령이 공포되었을 때 비로소 나도 전문가가 되었다. 이젠 나보다 더 첨단재생바이오법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들었다.




공무원은 담당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중앙부처 공무원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통상은 한 명이 한 개의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공무원은 맡은 분야를 빠삭하게 알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 또한 그 사람이 맡은 업무에 대해서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 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무원의 장점은 우리나라의 최고 전문가를 쉽게 만날 수 있고 언제든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르겠다면 너무 눈치 보지 말고, 물어보면서 부딪쳐 보자.

‘이런 말을 하면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대부분 불안한 감정에서 비롯된다. 문제를 해결하고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질문을 하기 전에는 ‘무엇을 모르는지?’ 그렇다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정리해 보자. 질문에도 예의가 필요하고 장황한 질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말하는 방법이 서툴다면 미리 연습하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 도움이 된다.


끝으로 질문하는 것이 두렵다면 어떤 이유로 질문하기를 꺼리는지도 생각해 보자. 만일 대화의 방식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질문보다는 거리를 두는 편이 차리리 낫다. 전문가는 그 사람 말고도 여럿이다.


아는 체 말고, 모르면 물어보고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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