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무관이 되다.
내가 공무원이 되었을 때, 목표는 사무관이 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에서 사무관은 중차대한 역할을 한다. 사무관은 정부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 효율적인지를 정하고, 지자체, 산하기관, 관련 협회의 조직 인력과 정부 예산, 법령 등 가용한 행정수단을 활용해 실제로 구현되도록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정책 기획이나 법률 제·개정, 예산 관리 등 핵심 실무를 책임지는 사무관은 누가 담당하느냐에 따라 정책 목표의 달성 여부가 달라진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사무관은 조직에서 볼 때 실무와 관리의 경계에 서 있는 중간 허리에 해당한다. 통상 두 명 내지 세명의 주무관과 일하면서 주무관의 능력을 끌어내고 국장 과장과 주무관 사이에서 교량적 역할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사무관은 주무관의 의견을 상사나 다른 부서에 전달하고, 주무관의 능력 향상을 위한 멘토 역할과 함께, 주무관에게 정부 정책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할 일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 일을 한다. 그래서 인사 시즌에는 유능한 사무관을 데려오기 위해 로비가 벌어지기도 하고, 특정 사무관의 존재가 부서의 인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공직사회에서 사무관 승진은 ‘사(事)’를 떼고 ‘관(官)’을 다는 첫 직위로서 상징성 있게 받아들여진다.
나는 사무관이 돼서 내 손으로 제도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특정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사무관 승진이라는 명예를 빨리 갖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나에게 일이 넘어오더라도 상사에게 인정받고 있다 생각하면서 일을 완수하고자 노력했다. 주인 의식을 갖고 업무를 대했고, 동료들에게는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일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내공과 실력을 갖추기 위해 업무가 힘들거나 고비가 오더라도 참고 버텼고, 밝고 명랑한 태도와 자세를 유지하면서 일하려 했다.
그렇게 11년 만에 나는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사무관이 되면 몇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 번째는 호칭이 바뀐다. 전에는 '주무관' 또는 '선생'으로 불려졌다면 승진한 그날부터 '사무관'으로 불려진다. “사무관”은 좀 더 공적인 호칭으로 느껴질뿐더러 상대방이 나를 중간 관리자로 대하기 때문에 말투에도 격식과 무게가 느껴지기도 한다. 외부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사무관님으로 부르고, 결재문서에서도 결재자 직위가 사무관으로 표시된다.
둘째는 연봉이 오른다. 월봉과 수당 인상분을 포함하면 대략 천만 원 정도 늘어난다. 매년 고만고만한 인상폭에서 승진을 해야 비로소 큰 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사무관은 연봉제를 적용받게 되는데, 성과가 좋은 사람이라면 남들보다 더 많은 연봉 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셋째로 업무가 바뀐다. 민원 업무 등 실무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고, 중간 관리자로서 특정 분야를 총괄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맡은 분야에 대해서는 국회나 기자, 다른 부처 등 외부의 질의에 직접 대응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주는데 가끔은 언론에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공명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력적일 수 있다.
한편으로 승진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맡은 업무만 열심히 하면 됐던 팀원에서 팀원을 가이드하고 육성해야 하는데, 낯설고 부담이 크다. 시대가 변한 만큼 나이가 어린 직원에게 다가가고 코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이 일하는 주무관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일에도 힘을 쏟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주무관 때는 막히면 사무관에게 물어보거나 넘기면 됐지만 이제는 내가 해답을 만들어내야 한다. 사무관은 주무관이 해결하지 못하는 과제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거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한편, 사무관 승진에 포함되지 않은 동료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다. 직장생활에서 경쟁은 당연한 것이고, 모두 다 승진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고생했거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특별한 이유 없이 승진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도 한다. 개인의 성과나 능력을 계량하지 못하면서 관운이라 치부해 버리기에는 승진제도가 참 허탈하기만 하다.
사무관 승진은 개인의 경력 발전에 중요한 단계이다. 주무관으로 일할 때 느끼지 못했던 리더십, 외부와 소통, 협업을 사무관이 돼서야 비로소 경험하고 알게 된다.
사무관이 되고 나서 펼쳐진 새로운 세상,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지? 다음 편에서는 ‘사무관의 세계’에 직접 뛰어든 나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