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그 무게를 버텨라.
사무관으로 발령받은 때는 2023년 6월이었다. 나는 마약관리과에서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을 운영하는 정보계를 맡게 됐다.
과에 처음 배치된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주무관 때 내자리는 항상 문 앞이었지만, 이번에는 창가 자리였다. 나만 열 수 있는 창문도 생겼다. 사소한 변화였지만 처음이라 기뻤다.
우리 계의 업무는 마약류 취급내역 보고 제도를 운영하고 투약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새로운 부서에서 담당할 업무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사무관의 역할을 깊이 고민할 틈이 없었다. 일을 위임하는 것보단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상사가 지시한 업무 처리는 대부분 내가 했다. 사무관이 되었지만, 주무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생각이 바뀐 건 장마가 끝나고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당시 유명인의 마약사건이 터지면서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문제가 계속 보도됐다. 국회는 관련 자료를 요구하면서 정부의 강력한 근절 대책을 요구했다. 나 혼자서 처리하기엔 벅찼다. 리더십이 필요했다. 나는 팀원의 역량을 끌어올려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하고, 법령이나 감시를 담당하는 다른 부서와도 협력해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다.
우리 팀원은 세명이었다. 한 명은 개발분야를 전공한 전산직 신규 직원, 한 명은 육아휴직 후 복귀한 약무직, 한 명은 이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심사원이었다. 모두 열심히 하려 했지만 경험이 부족하거나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우선은 급한 것부터 처리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회 요구자료였다. 요구 자료를 몇 개의 유형으로 구분하고, 유형별로 표준 답변을 만들었다. 통계는 A 직원이, 제도 관련 질의는 B 직원이 맡았다. 나는 일정 조정과 외부 소통을 담당했다.
국회에서 자료 요구가 오면 바로 팀원에게 배정하고, 답변방향을 알려줬다. 팀원이 자료를 작성하면 빠르게 검토해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의원실별로 목록을 만들어, 앞으로 어떤 질의가 있을지 예측했다. 그리고 기한 내에 자료를 제출해 국회에서의 불만도 최소화했다.
그해 국정감사에서는 의료용 마약 관련 많은 질의가 있었지만 관련 예산 증액과 제도 보완을 중심으로 정리됐다. 큰 질책 없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국정감사 후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약무직 주무관이 부서 내 다른 계로 이동해 팀원은 줄었다. 반면 그간의 밀린 업무도 처리해야 했고, 국정감사 후속조치로서 오남용 예측 시스템을 새로 개발해야 했으며 기존 시스템도 수정보완이 필요해 업무는 늘었다.
연말부터 전산직 직원과 함께 마약류 오남용 예측 시스템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신규 직원이었지만 전공자였고 의지가 있어 곧잘 해냈다. 하지만 내가 다른 현안 업무를 신경 쓰면서 직원에게 실무를 위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직원이 지치는 것이 느껴졌다. 새롭게 사업자를 선정하고 개발할 사업을 정리하는 등 실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담이 컸던 것 같다.
업무 조정을 하고 싶었지만 다른 직원도 업무 부담을 얘기하는 상황이었다. 새로 충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당장은 방도가 없었다. 직원이 버텨주길 바랄 뿐이었다.
직원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 사업자 미팅이 일찍 끝난 날 소주 한잔 먹자고 했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 “요새 고민하는 게 뭐냐? “, ”여기서 어떤 것을 해보고 싶냐?”, “스트레스는 없냐?” 등을 물어봤다. 그렇지만 좀처럼 속내를 내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직원이 갑자기 면담 신청을 했다. “사무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보고할 일도 없는데 면담 요청을 한다는 게... 역시나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다른 회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처음엔 생각을 다시 해보라고 조언했다. ”몇 달만 참아보자. “, ”업무가 익숙해지면 지금보단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 그리고 너무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직원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내 생각만으로 붙잡을 수 없었다. 직원의 미래가 더 중요했다. 지금의 자리가 버거운 상황이라면 이직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옮기려는 회사가 여기보다 낫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뜻이 그렇다 하니 그리 나쁜 조건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직 일정을 조언해 주며 응원했다.
이상적인 팀장은 팀원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팀원의 마음을 움직이며 잠재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과 더불어 팀원의 정신과 체력 관리도 중요하다. 힘든 프로젝트 후에는 휴식을 권하고, 업무가 늦게 끝난 경우라면 다음 날은 늦게 출근해 지치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 '경기가 아무리 급해도 선수 생명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지 말고 팀원의 성장을 우선해야 한다. 선수가 꾸준히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눈앞의 승리를 위해 부상을 내버려 두는 것은 팀장의 실책이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팀원이 성장해야 팀이 성장한다. 팀장은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말고 장기적 시각에서 본질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팀원을 팀장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순간 팀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팀원을 파트너로 인식하는 팀장이라면 성공은 따라오게 될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