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 스타이즈 본
별이 되어 가든, 되었든
멀어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도
우린 부적응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에요.
적응된자들이 있을까? 적응중인자들이면 몰라도. 아직 적응을 마치지 않은 부적응자들, 그들에게 아픔과 슬픔, 갈등과 두려움을 견뎌낸 그가 건네는 마지막 말은 샛털처럼 가볍다.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은 사는 동안 여지없이 활활 다 태워 버렸으니 그의 영혼은 자유로울 예정이다.
다 알겠지만 이제 아무 상관 없어요.
어느 방향으로 바람이 불든
보헤미안 랩소디 (2018)
옛 방식들이 사라질 때 인가봐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아
‘Maybe it’s Time’이라는 곡명처럼 남자는 예정된 끝을 향해 걸어간다. 깊은 허무와 권태로 침잠해 있었기에 바닥에서 울고 있던 그녀를 구원할 수 있었나 보다. 남자는 천공의 별이 되어 버렸다. 여자의 눈엔 공간도 시간도 더이상 교차하는 지점이 보이지 않았다. 'never love again'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이번 생은 이미 차고 넘치도록 사랑했다."는 못다한 고백이다.
여자는 말한다.
자신을 어둠에서 건져 내 준 그에게
어둠 속에서 울고 있던 그녀 자신에게
말해봐, 소녀야
지금 세상이 행복하니
아니면 더 많은 게 필요하니
다른 무얼 찾고 있니
나는 빠져들어
행복했던 시간 속으로
그리고 비참했던 시간속으로 나는
말해봐, 소년아
공허함을 채우려다 지치지 않니
아니면 더 많은 게 필요하니
악착같이 버티는 게 힘들진 않니
나는 빠져들어
행복했던 시간 속으로
그리고 비참했던 시간 속으로 나는
깊숙이 빠져드네
내가 뛰어드는 걸 봐
바닥에 부딪히지 않고 뚫고 나가
상처 입지 않을 곳으로
얕은 곳에서 멀리 벗어나
<Shallow - Lady Gaga & Bradley Cooper>
스타이즈본 (2018)
두 영화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등장하는 인물이 실존이든 가상이든을 떠나, 음악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어쨌든 주인공들의 삶이 사라지게 만든 것은 지독하고도 아름다웠던 사랑이었다. 자신의 사랑을 숨길 수 없어서, 혹은 자신의 사랑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함께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부재'는 통증이다.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그들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것은 통증이라는 감각 뿐이다. 사랑했던 감정, 간절한 그리움 등이 통증을 불러 일으키면 마음 속에 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통증이 있는 한 우리가 서로 관계한 시간에 대한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