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를 들어 사는 자여, 관리의 의무를 다하라!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락뮤직 콘서트장에서는 연주와 연주 사이에 막간을 이용해 구입한 티켓의 번호를 추첨하여 경품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소리 질러!"를 목청껏 외치던 락스타는 본인의 손으로 직접 건져 낸 추첨용지의 번호를 들고 한참 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자가 안 보여요?" 옆에 있던 후배 뮤지션이 짓궂게 운을 뗐다. 락스타가 일순간에 보통의 중년 남자이 되어 버린 순간, 공간 안에는 폭소가 터졌다. 입이 찢어지도록 웃어댔던 사람들 중에 나도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때의 그와 다르지 않게 되어 버렸다. 어느새 몸을 덮친 위대한 시간의 힘 때문이다.
주변에 동년배가 유독 많은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 너와 나 할 것 없이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동료들의 책상 위에는 언제부터인가 하나둘씩 약병들이 모니터 근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비타민류는 기본이고 고혈압, 고지혈, 관절염, 혈액순환 개선, 시력감퇴 개선 등의 만성질환을 완화시키기 위한 약들이다. 매일 한 주먹의 약을 달고 살아야 마음이 놓이는 때가 된 것이다. 딱히 알아보지 않아도 주변은 각종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정보들로 넘쳐난다. 관심의 상당 부분은 본능적으로 이것에 기울어져 있다. 이른바 건강염려증의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영양제 외에 딱히 특정 질환을 앓고 있지 않아서 무심했던 나조차도 작년부터는 이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일상적인 질환으로 부인과를 방문했다가 자궁에 주먹만 한 크기의 양성 혹이 포착되었고, 큰 병원에서 전신마취 수술을 하다가 혹 주변부의 내막증이 검출되면서 뜻하지 않게 끝을 기약할 수 없는 호르몬 치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 까닭이었다. 무언가 통증이나 불편감이라도 느껴서 스스로 찾아갔던 거라면 덜 했을 테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진료를 받다가 얼떨결에 내 몸을 누군가에게 빼앗겨 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찾아왔다. 생각하기에 따라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긴 것뿐이라 여겨도 그뿐이겠지만 그것이 '노화의 증후'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내 몸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서글픔이 나를 흔들었다. 앞으로 더 한 날들이 올 거라는 공포와 함께 말이다. 약의 부작용인지 심리적인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 증상으로 우울증에 빠지는 일도 종종 있다고 했다.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재발의 연장을 위한 지지부진한 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중단했다. 내게는 간헐적인 증상의 발현을 제지하는 것보다 하루하루의 일상적 삶을 우울감 없이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노화는 그렇게 온다. 아주 작은 것들이 점점 더 다양하고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몸의 변화를 알린다. 노화가 심적으로 힘든 것은 자신의 신체가 거창한 몸동작을 소화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만큼 사소했던 것들을 하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것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나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가족과 담소를 나누다가 출근을 하려고 일어날 때 뚝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와 그 주변에 고통스러운 압박감이 느껴지고 그게 한 1주일 간의 일상의 모든 자세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이것이 생활 자체에 영구적인 장애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해도 사소한 것에서 뜻밖에 태클이 걸리게 되면 다른 사소한 모든 것에도 움직임이 소심해질 수밖에 없다.
몸의 각 기관이 내가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도맡아 처리해 왔는지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참아왔던 아우성을 슬금슬금 터트리는 시기가 이때다. 때로는 밤의 길이를 세어야 할 불면으로, 머리가 숨을 쉬는 것 같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두통으로, 기온과 상관없이 조절되지 않는 체온으로, 의도치 않게 흐르는 체액으로, 만성적이 피로로 기관들은 반기를 든다. 여태껏 침묵했던 존재들의 소란 때문에 주인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은 이 기관을 달래고 내일은 또 다른 기관을 달래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어쩌면 나는 잠시 마음씨 좋은 주인댁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일 뿐일 수도 있다. 우리가 먹고 마시며 움직였던 모든 것들은 세를 든 자로서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권리였는지도 모른다.
몸은 우리에게 관심을 촉구한다. "세를 들어 사는 자여, 관리의 의무를 다하라!" 몸이 내는 목소리는 이것이다. 대부분의 질병은 생활 속의 사소한 나쁜 습관이 지속적으로 쌓여서 발생한다. 몸이 예민하게 반응함에 따라 생활을 돌아보는 것이 일상이 되고 건강검진의 지표들에 민감하게 바라보며 권고사항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지금의 몸을 유지해야 하는 시간도 늘었다. 늘어난 수명을 침상에서 보내거나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로 보내고 싶지 않다면 지속적으로 자신의 몸을 돌봐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몸의 여러 싸인들은 지금부터 특히 어떤 부분에 유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는 '단독 세입자를 위한 특별 서비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서비스를 받고 있을 때 잘 활용해야 한다. 몸의 호의를 무시하면 어느 날 성난 주인이 세입자에게 계약해지와 함께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