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시> 중에서
잘 아물었구나
흉터는 그런 것이다. 회복된 상처의 흔적, 상처에 점령 당하지 않고 굳굳하게 버텨낸 시간의 증표. 상처하나 남지 않고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니 세상에 패배자는 한 명도 없다.
살다가 잠시 멈추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해 어제 그리고 오늘 또 내일을 바라보며 깊게 심호흡을 해 보았다고 해서, 조금은 알 수 없었던 불안과 슬픔 그리고 우울함의 원인들을 찾아냈다고 해서, 그 이후의 삶이 이전에 내가 살아왔던 것과 아주 다르게 바뀌지는 않는다. 하여 가끔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의 벽에 다시금 주저 앉기도 하지만, 그때 위안이 되었던 한 마디가 있다.
한번이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아파해보고
그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져주며
따뜻하게 안아주어본 사람이라면
다음에 똑같은 상처가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상처에 회복되는 시간과 노력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삶이란 그리고 그 속에서의 나란, 매순간 다가오는 시련과 슬픔에 완벽한 보호막을 구비하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매순간 수선해가면서 고쳐쓰고 또 그것을 고치는 과정에서 다음의 시련을 대비할 힘을 키우는 것인 듯 하다. 회복에 대한 탄력성을 가지는 것,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랜 손때가 묻은 추억어린 애장품을 대하듯이 켜켜이 어루만지며 고쳐쓰며 그 고친 흔적들을 마음에 담아두며 추억하는 것. 그럴때 삶의 고비들이 내게 입히는 것은 '훼손'이라 아니라 '소중한 경험'이다.
2013년 어느날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