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카피 앤 페이스트' 세계
"핸드폰, 담배, 지갑 그리고 뽀뽀"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남편의 필수 점검 목록은 항상 똑같다. 가벼운 입맞춤과 함께 약간의 힘을 주어 서로를 안고 따뜻한 체온을 느껴며 하는 주고받는 말 "잘 갔다 와". 때때로 말다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아침에는 풀리지 않은 마음을 티 내기 위해 거르기도 하지만 대게는 매일 아침이 '카피 앤 페이스트'다. 다르지 않다.
하루를 마치고 미리 켜 놓은 온수매트 위에 나란히 누었을 때, 남편은 매번 한쪽 손을 뻗어 아내의 미간과 코 사이를 검지 손가락으로 여러 번 쓰다듬거나 손바닥 전체로 얼굴을 덮고 비벼대고 나서야 잠을 청한다.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내어 놓은 얼굴에 따뜻한 손의 온기가 느껴지면 아내는 고양이 소리를 내며 칭얼대다 노곤하게 찾아오는 졸음에 잠이 든다. 이 역시도 다르지 않은 밤의 풍경.
'먼 훗날 나는 이 사람의 무엇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게 될까?' 서로 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 요동치던 감정들, 젊은 시절 만나서 서서히 늙어가던 얼굴, 크게 웃거나 크게 화를 내게 만들었던 말들. 그것보다 선명하게 기억될 것은 '카피 앤 페이스트'같던 매일의 온기일 것 같다. 이미 수많은 날 속에 그것에 길들여져 버렸기 때문이다.
꽃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거야. 가시가 있으면
무서운 존재가 되는 줄 믿는 거야.
한때는 <어린 왕자> 속 장미와 같았던 때가 있었다. 결혼을 한 후 연애할 때와 달리 강렬한 끌림보다는 다소 무료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공유로 채워지는 나날들 속에서 '더 이상 뜨겁지 않을 모든 시간은 식어버린 시간이다.'라고 일방적으로 단정 지어 버린 시간이.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모든 나날이 서러웠던 때가 있었고 남편을 몰아세우게 되던 날이 잦았던 그런 때.
퇴근 후 귀가를 할 때 언제나 "뭐 사갈까?" 물어보거나, 일상에서의 불편함을 나도 모르게 투덜대는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고쳐 놓거나, 회사에서 업무가 몰려 잔뜩 짜증이 나 있을 때 기분을 풀 수 있게 "저녁 시간 쓰고 싶으면 써. 애 저녁은 내가 챙겨줄게"라며 일상의 소소한 틈을 소리 없이 채워주고 있었지만 아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마저도 아내가 가진 궁극적인 공허함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솔직하게 나누자는 제안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어쩌면 지나가다 주워들은 타인들의 하고많은 일상 이야기 중 유독 등장했던 타인의 동반자와 남편을 비교했던 것일 수도 있다. 타인에게는 있지만 내게는 없는 것, 오직 그것만이 모든 갈등의 씨앗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아니면 과거에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고 달라진 내 모습에 대한 회의감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랑이 생활이 되는 순간, 남편의 모든 관심이 변질된 것으로 왜곡시켜 바라본 것일 수도. 그렇게 타인과 다르고 나의 과거와도 다른 모든 것을 ‘변했다’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매번 변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라고 여겼다.
마음으로 봐야 보인단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네 장미가 중요한 존재가 된 건,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위협적인 공격으로 길들여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느 날 뜬금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의 관계를 다시 묻고 내가 원하는 모습의 그가 되어주기를 강요하는 건 자신이 상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미가 찌를 의지도 없으면서 가시를 드리대던 것처럼, 자신의 상처를 부각해 어린 왕자의 마음을 묶어 두려다 결국엔 그를 아주 먼 곳으로 떠나게 하고 한참을 우울한 방황 속에 배회하게 만드는 것처럼. 아마도 장미는 어린 왕자가 떠난 후에야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바람을 막아주려는 손길처럼 매일의 작은 관심들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고 있는 것들은 그 존재가 쉽게 잊힌다. 수도 없이 땅을 밟고 서서도 그 땅의 존재는 감각 안에 딱히 없듯이. 길들여져 네 것이 내 것이 되어 버린 모든 것들은 그렇게 쉽게 잊힌다. 웬만큼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