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망한다.
어느 날부터 '혼자만의 시간'이 삶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간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고 나 역시도 말없이 동의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되도록이면 남들보다 앞서지는 못해도 뒤처지지는 않아야 한다고, 좋은 평을 듣지는 못해도 나쁜 평을 들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배웠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담금질하고 결국은 이루고 낸 자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실패를 통해 배운다'라는 말도 있었지만, 성공할 확률이 낮거나 희박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이 들끓는 욕구들에 힘입어 움직이다 실패한 자가 무엇을 위해 다른 이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는지는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는 거듭되는 실패 끝에 결국 이루어내고 만 후의 이야기였으므로 그 역시 이루고 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명백한 실패 이야기는 세상에 나오기 어렵다. 반전이라는 감동의 착장 없이는 말이다.
내가 익히 아는 선에서, 무언가를 이루어 낸 자의 뒤를 따르는 전형적인 방법은 '꾸준히 자기 계발에 힘쓰고 막중한 책임을 감수하며, 가급적이면 감정적으로 대립하지 않고 타인의 눈에 흠으로 잡힐 만한 것을 피하는 것'이었다. "누가 그것을 가장 잘하지?"라는 말은 이미 서열을 내포하고 있었다. 경쟁, 나는 그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참 피상적인 누군가의 뒤를 쫓다가 문득 거울 앞에 선 순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고 난 후에야 내가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산이 두 번은 바뀌었을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혼자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경로와 무관한 길을 걷는 일이 잦아진 것이. 그렇게 나는 도망한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타인인지 나인지도 모를 내 안에 숨어든 타인들의 시선을 피해, 목소리를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