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10kg의 배낭을 메고 걷는 다는 것

by someday

다음날엔 태양의 섬에서 나와 계속 이동만 했다. 수크레에 가려면 볼리비아의 수도이면서 위험한 도시로 칭해지는 라파즈를 지나야했다. 라파즈에서 머물 생각은 딱히 없었기 때문에 계속 이동 했다. 코파카바나에서 버스를 타고 라파즈에 갔고 라파즈에서 또 야간버스를 타고 수크레에 도착했다.


수크레에는 가고 싶은 호스텔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로 바로 가보기로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걸어가면 2~30분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사실 난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우리 가난한 장기 배낭여행자 친구들은 걷자고 했다. 혼자 택시를 탈 수도 없고 내가 낼테니 타자고 해도 이 착한 친구들은 신세지기 싫다며 괜찮다고 했다. 허허. 그래 나도 배낭여행자니까 걷자 걸어! 하며 같이 걸었다. 아이고 허리야.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배낭을 메고 갈지 캐리어를 끌고 갈지 엄청 고민했었다. 대학생때 한달 정도 유럽 배낭여행을 할때는 캐리어를 끌고 갔었고 직장인이 되어 태국 북부를 2주쯤 여행할때는 배낭을 메고 갔었다. 배낭은 질질 끌고 가지 않아도 되어 편하고 배낭여행자의 기분이 나서? 뿌듯하지만 허리가 너무 아프고 짐을 넣고 빼기가 불편했다. 캐리어는 허리도 안아프고 짐을 넣고 빼기도 편하지만 길이 안좋을땐 끌고 다니기가 힘들고 배낭여행자 같지가 않았다..? 결국 이번 여행엔 짐을 넣고 빼기 좋은 배낭을 발견해서 배낭을 메고 왔다. 하지만 그 선택의 이유엔 사실 불편함보다 배낭이 주는 '느낌'이 컸던 것 같다. 직장인이지만 자유로운 배낭여행자이고 싶었다고 해야할까. 캐리어를 끌고 가면 배낭 메고 여행 온 친구들이랑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풉) 그래서 나의 허리의 외침을 무시하고 배낭을 메고 온 것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호스텔을 향해 수크레의 골목길을 걸었다. 내 몸은 힘들다 소리쳐댔지만 골목길을 걷는 건 역시나 좋았다. 사람들, 집, 공원, 나무, 작은 상점들. 택시를 타고 갔으면 아마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들.. 이라고 포장해보지만 택시타고 가방 내려 놓고 걸어도 됬을 골목길이긴 했다 하하. 장난이다. 골목길은 좋았다.


돌이켜보면 나도 20대 중반까진 해외에서 택시라니 진짜 꿈도 못꿨다. 일본, 유럽에서는 물가가 비싸서 특히 그랬고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동남아에 가서 택시를 타봤다. 직장인이 되고 출장으로 여행으로 동남아를 많이 방문하게 되고 나서야 택시도, 호텔도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여행가서 힘들면 택시타는 일은 이상하지 않다. 아마 게으른 여행이 좋고 마음 놓고 게으른 여행을 할 수 있게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 돈을 아껴쓰고 말고를 떠나서 여행에가서 어떻게 해야한다는 압박, 편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여행가서 한국음식을 먹지 않는다든지, 택시는 무슨 걸어야지! 여행 왔으니 구경은 해야지! 가만히 있기는 좀 그렇지! 등등 다양한 규칙아닌 규칙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어졌다. 해외든 어디든 한국 음식이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고 카페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여행이며 호스텔을 가든 호텔을 가든 원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마음가는대로 할 수 있다는게 여행이 아닐까. 서울에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으니까.


물론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걷느냐 택시냐 보다도 중요한건 그냥 흘러가는대로 즐기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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