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게으른 수크레

by someday

수크레는 게으른 여행에 딱 어울리는 도시였다. 볼리비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 여유가 있어보이는 현지 사람들, 낮엔 따뜻하고 저녁엔 선선한 날씨, 감색 지붕과 착한 물가까지.


세계여행을 하고 온 지인은 '수크레는 눌러앉기 좋은 도시'라고 했다. 그는 수크레를 굉장히 좋아했다. 노란 연습장을 사서 한국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정보를 적어 '파차마마'란 호스텔에 두고 왔다고 했다. 아직도 있는지 사람들이 뒷장을 많이 채웠을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파차마마'엔 아직 그 연습장이 남아있었다. 호스텔 직원은 우리에게 방을 소개해주면서 연습장도 같이 소개해줬다. 연습장은 여행자들의 손때를 간직한 채 그대로 잘 있었고 차곡차곡 더해진 정보로 가득차있었다. 알고보니 그 연습장은 유명해져서 가이드북에 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장 한장 사진을 찍어 지인에게 전송했다. 몇년 전 두고온 내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이 더해져 더 멋진 흔적이 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엄청 멋진 기분이겠지? 그리고 지금의 자신은 서울에 있음에 그립고 쓸쓸하기도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미션을 성공하고 나니 나는 뿌듯했다. 뿌듯하긴했지만 막상 연습장에 있는 정보는 자세히 보지 않았다. 지인이 세계여행할 시절엔 남미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지만 이젠 인터넷에도 가이드북에도 정보가 많아져서 크게 필요가 없기도 했고 나는 3,4일 머무르다 떠날 사람이니 누가 가르쳐 주는 대로 가는 것보다 발길 닿는 데로 헤매는 것이 좋았다.



파차마마 호스텔은 노오란 연습장보다 더 좋았다. 아늑했고 따뜻한 색을 머금고 있었고 방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아름다웠다! 한가롭고 더웠다.


호스텔에 멍하니 누워있다가 야간 버스에서 묵힌 몸을 상쾌하게 씻고 슬슬 밖으로 나가보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카페도 약국도 가게들도 죄다 문을 닫고 조용하기만한 수크레.

나른한 광장과 시끌벅적한 놀이터

광장을 지나 공원으로 가본다. 어딜가든 역시 공원과 시장이 최고다! 공원 이름은 에펠 공원이었다. 옆에는 큰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가득했다. 시끌 벅적 해서 이제야 좀 사람사는 곳 같았다. 한켠에는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들도 있고 덤블링도 있었다! 마치 일요시장 같은 느낌이랄까



배가 고파서 두리번 두리번 해보니 인심 좋아보이는 아주머니가 음식을 잔뜩 들고 나오셔서 팔고 있었다. 길거리 음식을 즐기지 않는 분들에게는 시각적으로 불안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 먹는 건 다 비슷하다! 먹어보니 약간 제육볶음 맛이었다. 다행히 일행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분이어서 둘이 벤치에 앉아 후루룩. 얼마였지 한 2천원쯤이었던가.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가 시장을 찾아 과일을 한웅큼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 낮잠을 잤다. 나른하고 조용한 호스텔에 누워 문 밖으로 살랑살랑 들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느끼며 작고 멀리서 울리는 새소리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잠에 빠지는 그때 그 기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느낌이다. 그 어떤 멋있는 관광지를 가도 느낄 수가 없다. 이게 바로 나의 게으른 여행의 행복이다.


게으른 낮잠을 자다가 배가 고파 잠에서 깨어 1층으로 내려가 보면 이미 일행들도 슬렁슬렁 돌아와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거리와 저녁으로 먹을 거리를 산다.


두손 가득 빵이랑 우유, 치즈를 사고 세계인의 먹거리 훈제닭고기를 사서 숙소로 돌아간다. 해질 무렵의 수크레는 거짓말처럼 핑크색으로 빛나서 그냥 걸어가고 있을 뿐인데도 기분이 묘했다. 숙소에서 이것 저것 차려서 저녁을 뚝딱 하고 맥주를 사다가 꿀꺽 꿀꺽 마시면서 담소를 나눴다.


일행이 있는 여행은 분명 즐겁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이야기, 낯선 느낌들. 하지만 내 여행 같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의존도가 높아지기도 하고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일행이 없을 땐 외롭고 일행이 있을땐 산만하다. 삶도 똑같겠지 생각하며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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