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사랑의 생애
'이승우'란 작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몇일 전에 읽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독서법에 대한 책에서 그가 예찬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는 작가였다. 어떤 문장으로 극찬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이승우의 문장을 사랑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사랑의 생애'란 도서를 빌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그대로 취향저격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머릿속에만 들어있는 그 생각들, 말장난같은 철학적인 생각들을 그대로 녹인 글들이었다고 해야할까. 몇일 정도의 길지 않은 사건들로, 그닥 신선할 것 없는 사랑이야기를 가지고서 등장인물들의 엄청난 고뇌와 심리, 그리고 그 무의식을 파헤치며 깊게 파고 파고 또 파며 우리의, 사랑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의 본질을 파고든다.
본질에 다가서려는 이 언어들이, 누군가에겐 읽기에 힘들거나 말장난 같거나 복잡하기만 할수도 있을 것 같아서 누구나 좋아할만하다고 말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 (허나 우리의 삶 자체가 말장난 같지 않던가) 다만 나에겐 굉장히 신선하고 공감되며 가슴을 치는 문장들이었기 때문에 너무 좋았고, 이 작가의 책을 여러권 더 찾아 읽을 예정이다.
좋았던 문장들은 아래에 적는다.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사랑을 하며 살 수도 없는 이 난처한 사람은 사랑을 하지도 못하고 안 하지도 못한다. 사랑을 하려고 하면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사랑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사랑을 하지 않을 때의 불안이 덮치기 때문이다. "
"평생 한 사람만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고? 그것은 낭만적으로 이상화된 속설일 뿐이다. 또다른 친구가 되물었다. 낭만적으로 이상화된 속설이라니, 유일하고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랑을 의심하는 것인가. 그런 사랑이 부도덕하다는 것인가? 준호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자기 주장을 이어갔다. 유일하고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랑이 이상화된 것은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사회를 갈등과 혼란에서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유일하고 영원한 사랑의 불변성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 쓴것이 아닌가."
"연애가 왜 당연한 것처럼 결혼을 지향해야 하는가, 하고 그는 항의했다. 연애는 왜 자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연애는 왜 시작과 끝을 자기 내부에 보유하고 있는 독자적이고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중략.. 왜 그처럼 불완전하고 타율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결혼과 사랑은 다른 층위에 위치해 있다는 주장, 결혼은 사랑과 전혀 상관없거나 아주 조금만 상관있다는 주장이 되풀이되었다."
"행복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행복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행복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상태를 동경하고, 그렇지만 행복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행복한 상태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자각하지 못한다. 행복해도 행복한 걸 모르고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은 걸 모른다."
"행복을 탐하면서 행복이란 게 있기는 한건지 의심하고, 동시에 정말로 행복해질까봐 전전긍긍한다. 행복해지려 하지만, 행복해지면 안될 것 같아서 행복해지지 않으려 한다. 행복해지면 불행해질 것 같아서 행복해지지 않으려는 당착이 그를 지배한다. 행복은 그가 간절하게 갖기를 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갖게 될까봐 주저하는 것이 된다. "
"사랑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이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 욕망하는 것은 연인의 마음이다. 그것을 욕망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내부에 살기 시작한 사랑이다. 그런데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걸 가질 방법은 없다. 누구에게도 그런 능력은 없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