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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Jul 26. 2019

엔딩 크레딧

나는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않는 영화관을 사랑한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어나버리기보다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영화의 여운을 느끼고 간직하기를 좋아한다.


오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읊어주는 무언가가 있었던가?

성공적인 광고를 찍었다고 해서 제작자나 편집자, 마케터의 이름을 읊어주지 않는 것처럼,  서비스를 런칭할 때 기획/개발/디자이너의 이름을 표기하지도 않고 뮤지컬이나 전시회, 페스티벌도,  심지어 드라마도, 샴푸 같은 제품을 출시할 때에도 준비한 모든 사람들을 그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고 알기도 어렵다. 


아직도 영화 산업이 일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는 하지만 저 엔딩 크레딧 만큼은 꽤나 감동적이고 꽤나 자상 하단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내 이름 한 줄이 올라가는 그 순간. 아무리 힘들어도 그 순간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겠지.


이 영화가 상영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주연 배우나 감독뿐만 아니라 조명도 촬영도 음악도, 팀장님부터 사원까지, 홍보대행사의 막내 사원도, 장소를 제공해주신 고마운 분들도 있었다고 그렇게 꼼꼼히 이야기하는 엔딩 크레딧.


이런 생각을 했다고 짝꿍한테 이야기했더니 그거라도 있어야 영화 일을 하지, 돈 많이 못주니까 엔딩 크레딧에라도 넣어줘야지 라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낭만 파괴자라며 힐난했으나 실제로 찾아보니 열정 페이에 대한 보답으로 시작된 것이 맞았다.


초창기 영화엔 엔딩 크레딧 문화가 없었다고 한다. 표기하더라도 주연배우나 감독 정도만 표기했었다고. 처음으로 모든 제작진의 이름이 들어간 영화는 스타워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 감독 청춘 낙서(1973)란 영화였는데, 제작비가 없어서 거의 무료봉사로 일한 스태프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모두의 이름을 올렸고, 이를 계기로 크레딧 문화가 번지게 되었다는 훈훈하지만 열정 페이인 이야기..?


그래도, 근무 환경이 열악한 업계는 많지만 이렇게 모두의 이름을 얹어 감사하는 것은 엔딩 크레딧 밖에 없지 않은가! 만화책에도 어시스턴트 이름은 없고 비행기에도 승무원이나 조종사 이름은 없다. 환경이 어려운 것과 별개로 엔딩 크레딧은 그래도 감동이다. (내 기준)


마블에서 쿠키영상을 열심히 만들어서 엔딩 크레딧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불이 켜지고 문을 열고 직원분들이 서계시기 일쑤다. (상영 준비시간을 짧게 주는 영화관 탓이지 직원분들 탓은 아님) 사실 나도 예전과는 달리 엔딩크레딧을 보지 않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 직원분들께도 미안해서...)


유일하게, 혹은 쉬이 찾아보기 어려운, 일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시간인데  되도록이면 끝까지 봐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좀 더 나은 관람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다른 일에서도 엔딩 크레딧 처럼 눈에 띄지 않는 부서들의 노력도 모두가 잘 알아주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급 마무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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