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딸 부잣집 화목한 가정이었고 아빠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셨다. 형편이 엄청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일하는 곳에서 트럭을 (포터) 사용하는 일을 하게 되셨고 그 포터를 타고 다섯 명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산으로 강으로 주로 다녔고 그 시절에 뭐 인터넷도 없고 캠핑장은 비싸니까(캠핑장도 거의 없었을 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괜찮아 보이는 데 있으면 가서 텐트 치고 놀거나 포터 위에 텐트 치거나 달리다가 배고프면 포터 위에서 라면도 먹고 그랬더랬다. 아마 숙소 여행은 비싸니까 그런 여행을 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때 그 시절 아빠가 텐트 치는걸 옆에서 도우면서 팩도 박아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뭐 제대로 하진 못하고 옆에서 알짱거렸겠지만.. 7~8살이었으니까..ㅎㅎ) 맞아 그랬었다. 생각해보면 그땐 캠핑이란 말도 없었을 시절이었을 텐데. 막내였던 내가 초등학교 4~5학년쯤 되니 이미 언니들은 중, 고등학생이 되었고 자연스레 가족 여행은 줄고 아빠 엄마도 두 분이서 등산을 더 자주 다니시게 되었다.
그 이후론 텐트란 걸 접할 일도 없었는데..
그러다가 20대 중반쯤? 페스티벌 열심히 다니던 시절 월디페(월드 디제이 페스티벌)를 예약하려는데 텐트포함 입장권이 있길래 어차피 숙소비도 아끼고 재밌을 것 같아서 그걸로 예약을 했다. 굉장히 늦게 페스티벌 하는 곳에 도착해서 텐트랑 이것저것 장비를 대여받고 어두컴컴한 데서 텐트를 치겠다고 뚝딱뚝딱.. 그래도 나름 어렸을 때 쳐봤다고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에 대충 쳐놓고 나가서 춤을 추고 놀다가 비를 맞으며 돌아와 보니 텐트 앞에는 물이 흥건..ㅋㅋ 결국 그 앞에서 쪼그리고 잤다는 이야기. 그 이후론 또 구경도 못했다. 내가 캠핑을 가게 될 줄 상상도 안 해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야흐로 때는 5월, 무료한 주말에 지쳐가던 짝꿍과 나는 갑자기 캠핑 갈래? 하곤 죽이 착착 맞아 눈을 빛내며 순식간에 미친 듯이 캠핑용품을 쇼핑하곤 그 주 주말에 캠핑을 떠났다. (좋은 세상..) 인터넷 열심히 찾아서 처음 간 곳은 바로 노지/차박 캠핑의 성지라 불리는 충주의 수주팔봉. 그곳엔 차가 빼곡하게 주차되어 마치 주차장 같기도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는커녕 텐트는 따닥따닥 붙어있었지만, 뷰만큼은 고요한 강물과 초록 초록한 산이 가득했다. 어른? 되고 떠난 첫 캠핑은 생각보다 너무 좋았고 보람차고 건강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좋았던 걸까.. 어쩌다 보니 그 이후 이번 주까지 7주 동안 연속으로 캠핑을 하고 있다. 다음 주에도 과연 8주 연속 캠핑을 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7주의 기록을 간단히 남겨본다.
0516 첫 캠핑, 충주 수주팔봉
차박으로 떠났던 첫 캠핑! 생각보다 차에서 자는 건 답답했고 에어매트는 실패였고 주차장 마냥 차는 많았지만 불멍도 좋았고 물 멍도 좋았고 고기도 맛있었고 잔잔한 강물도 너무 좋았던 첫 캠핑.
0523 두 번째 캠핑, 여주 달맞이 공원
첫 캠핑 후 텐트를 질렀다. 테이블도 사고 램프도 사고 쇼핑에 쇼핑을 했다. 지프 텐트는 너무 예쁘고 좋았지만 무거웠다. 어디로 갈지 엄청 고민하다가 찾은 여주의 달맞이공원. 코로나 아이스박스도 개시하고 자충매트도 개시했다. 시내 근처에 있는 공원이라 치킨 배달도 된다. 캠핑 후에 여주 시내 구경도 잠시. 작고 조용한 동네라 너무 좋았다.
0530 세 번째 캠핑, 여주 달맞이 공원에 한번 더
가깝고 좋은 잔디에 화장실도 깨끗한 곳이라 친구네 커플과 한번 더 방문. 역시나 이번에도 잔디밭도 푸릇푸릇 나무도 많아서 너무 좋았지만 노지에 동네다 보니 근처 어르신들이 술 드시러 많이 오시는 듯 밤부터 아침까지 큰소리로 떠들며 약주하시는 어른들이 있어서 힘들었다. 지난주에 운이 좋았던 것.. 역시 뭐든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캠핑이었다. 그래도 시내가 가깝고 심지어 앞에 백숙집, 초계 국숫집까지 있어서 텐트 접고 걸어가서 초계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크나큰 장점이 있다. 초보용 노지랄까.
0606 네 번째 캠핑, 여주 강천섬
강천섬은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15분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빼면 정말 너~~~~ 무 좋은 노지다. 이때까지 우리는 전혀 경량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텐트만 30킬로.. 의자랑 테이블도 무겁고 큰 아이들이어서 웨건에 거의 7~80킬로를 싣고 밀고 끌며 죽을 둥 살 동하며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천섬은 너무 좋았다. 매우 넓어서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도 조용했고 아름다웠다. 다만 나무 그늘은 거의 없어서 더울 때 타프가 없으면 힘들 듯했다. 다음에 경량화해서 좀 더 안쪽으로, 강가를 바라보는 뷰로 가보자고 생각했다. 가을에 또 갈 것 같은 느낌..
0613 다섯 번째 캠핑, 양양 바닷가 캠핑장
이 주의 일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나는 선물로 바다 캠핑을 가고 싶었고 캠핑장은 다 꽉 찬 듯했기에 일단 동해로 달렸다! 야영장, 캠핑장이라고 쓰여있는 곳들을 몇 군데 훑어내려가다 보니 역시나 럭키! 자리 있는 캠핑장이 있었고 (전화로만 예약되는 곳) 심지어 해변 바로 앞.. 감동.. ㅠ_ㅠ 파도소리 들으며 멍 때리는 기분은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열심히 멍 때리고 고기를 구워 먹고 맥주도 한잔 하고, 이게 바로 바다 캠이구나 싶었다. 아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곳이 첫 캠핑장이었는데, 겪어보니 샤워실/개수대/화장실이 잘 갖춰진 곳은 좋구나 라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노지만 다녀서 세제 같은 건 안 들고 다녔는데 아 이제 세제를 들고 다녀야겠구나 싶었다. (원래는 물티슈로 닦아서 집에 가져와서 설거지)
0620 여섯 번째 캠핑, 또 그 해변
사실 이 주는 정말 안갈예정이었다.. 난 일요일 1시에 친구 결혼식에 가야 해서 안 가기로 하고 짝꿍 혼자 솔캠을 가거나 쉬거나 하려고 했다. 토요일 점심이 돼도 갈지 말지 생각 중 이라던 짝꿍은, 양양에 놀러 갔단 친구네 커플과 몇 마디 대화를 하더니 갑자기 또 양양에 가자고 나섰다. 무리인가 싶긴 했지만 지난주 바다가 너무 좋았던지라.. 에라 모르겠다 결혼식 갈 옷을 싸들고 오후 4시가 넘어서 바다로 달렸다. 아 그리고 드디어 30kg짜리 예쁜 지프 텐트를 팔고 가성비 좋고 설치 편하고 가벼운 캠프타운 엘파소를 구매했는데 아마도 이 텐트를 피칭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오토텐트 너무 좋다.. 설치 5분!!!) 무튼 저녁이 돼서야 도착한 바다는 역시나 너무 좋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고 양양으로 넘어가 친구네 커플과 이야기도 하고 놀다가 다시 돌아와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쿨쿨. 아 이날은 좌식에서 입식으로 변경한 첫날이었다. 이너텐트 없이 야전침대에서! 매트 안깔아도 되서 편하고 잠자리도 생각보다 편했다. 그른데 더위많이탄다고 까불다가 얇은 이불 덥고 자다가 얼어죽을뻔했다 후후. 원래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 아닌데 (캠핑 가서도) 결혼식땜에 10시쯤 출발해서 겨우겨우 시간맞춰 참석했다. 대단하다..
0627 일곱 번째 캠핑, 양평수목원
캠핑 시작하고 2주 차쯤 되었을 때 캠핑 관련 앱을 다 설치해서 여기저기 기웃기웃했었다. 그때 수목원/휴양림 캠핑장이 너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주말은 거의 자리가 없었다. 가끔씩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자리가 나서 예약하게 된 양평 수목원 캠핑장. 친구네 커플과 두 가족 데크를 예약했다. 캠핑장 사이트 중에서도 숲 속/단독 데크. 사실 첨부터 캠핑장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예약하기 어려워서 못 간 것도 있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난민촌 스타일의 캠핑장이 싫어서였다. 잘 찾아보니 캠핑장은 많고 단독 사이트를 보유한 곳도 꽤 있어서 계속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무튼, 산속이라 공기도 좋고 데크에 첨 텐트 쳐봤는데 편하고 관리가 잘 되는 캠핑장이라 정말 밤 10시 이후엔 조용하고 너무 좋았다. 아 이래서 캠핑장에 오는 건가 싶기도 했고.. 서울에서도 가깝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