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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Nov 19. 2020

코로나 시대의 결혼식 회고

결혼식 회고라니. 내가 썼지만 너무 웃기다ㅋㅋㅋ


그치만 회고하고 싶었다. 보통 회고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좋았던 것 아쉬웠던 것을 되돌아보며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지만, 다음에 더 잘하려고 회고를 하는 건 아니고... ㅋㅋ 생각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지만 하고 보니 사실 거의 다 직접 우리 손으로 해버린 결혼식에 대해 자세히 남겨놓고 싶었다.


간단히 나의 상황을 이야기해보면...

짝꿍과 나는 거의 10년을 만났고 이미 몇 년째 같이 살고 있었고 양가 부모님과의 만남, 그리고 '결혼식'이란 건 나아아아중에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전세로 이사를 가려고 알아보다 보니 당시 휴직 상태였던 딱 그때에만 신혼부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부모님들께 결혼식은 곧 하겠다란 허락을 구하고 혼인 신고를 먼저 했다. 


그렇게 작년 9월쯤인가 식장을 알아보다가 20년 4월로 식장을 예약했고 그 이후는 다들 예상하는 대로 코로나 때문에 9월로 미루어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결혼식에 대한 계획이나 환상이 없었고 (언니들이 있어서인가) 짝꿍은 결혼식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처럼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 또는 아예 해외에 가서 마음에 드는 카페나 술집에 들어가서 양해를 구하고 거기 모인 사람들과 함께 우리 결혼해요! 하면서 유튜브 라이브, 이런 식으로 좀 우리 다운, 해야 해서 하는 결혼 말고 재미있게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은근히 안정적인 것을 원했고 식은 하고 싶다고 해서 약간의 중간 지점을 찾아 식순은 짧게 인사는 길게 하는 결혼식을 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9월이 다가왔고 8월 말 갑자기 코로나는 더 심해졌고 결혼식을 하냐 마냐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웨딩홀은 옥상에 위치한, 앞에 야외 마당이 있는 식장이었다. 실내 50인 이하, 실외 100인 이하의 제한이 있었던 때에 마침 다행이었다. 하지만 위험은 어쨌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걸 막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고민한 결과 최대한 사람들이 한 번에 몰리는 것은 막아보자! -> 그러면 1~2시간 동안 다들 나눠서 오게 하면 어떨까? -> 그럼 식순 없이 그냥 파티처럼 인사만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의 과정을 거쳐 별도 식순 없이, 1~2시간 동안 자유롭게 와서 인사 나누고 사진 찍고 얘기하는 정말 약간 파티 같은 컨셉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식순 없는 결혼식


말 그대로 입장, 퇴장, 예물 교환, 단체사진 등의 모든 식순은 없앴다. 마치 파티처럼 신랑 신부는 야외 마당 가운데에서 오시는 순서대로 인사하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하객분들도 모두 같은 시간에 오는 게 아니라 3시 반부터 4시 반 사이 편하신 시간에 오시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식사는 제공하지 못했고 스탠딩 파티처럼 물과 과자 정도만 세팅했다. 결혼식장은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이 쉬거나 하는 공간으로만 열어두었다. 


하객들 초대할 때도 헷갈리실까봐 문구도 엄청 열심히 + 신중하게 썼다.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대략 정사각형 느낌의 가든



음악은 재즈로

원랜 예식장 야외무대에 현악 3중주가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헌데 우린 그 매번 결혼식에서 듣는 클래식보다는 파티 분위기를 내줄 수 있는 음악이 틀고 싶었고.. 마침 캠핑 다닌답시고 마샬 휴대용 스피커를 질렀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유튜브에서 음악을 골라 재생목록을 만들어서 (1시간짜리로)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틀었다. 마샬 스피커는 야외 공간을 충분히 커버하며 분위기를 확 살려줬다. 너무 처지지 않는 조금 빠른, 파리 분위기 나는 재즈로 틀었는데 avalon jazz band 란 채널에 좋은 음악이 많았음. 

https://www.youtube.com/user/avalonjazzband


우리가 원하는 음악을 튼 것은 넘넘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 반전은 막상 나는 정신이 없어서 음악이 나오는지 어쩌는지 들은 기억이 없다.. ㅋㅋㅋㅋ 하지만 사람들이 좋다고 했다.. ?ㅋㅋㅋ 아 그리고 유튜브 라이브 녹화된걸 보니 음악이 계속 잔잔하게 흘러서 분위기가 좋아뵜다 성공




유튜브 라이브 


코로나 때문에 못 오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유튜브 라이브도 동시에 진행했다. 애초부터 난 본식 스냅만 부르고 영상은 안 불렀는데 그만큼 크게 영상 욕심은 없었다. 욕심도 없고 엄청난 장비를 구하기도 어렵고 해서 삼각대를 사서 아이패드로 라이브를 했다. 알아보니 모바일에서 라이브 하려면 구독자 1천 명을 모아야 한다고 해서 못하나 싶었는데 아이패드는 모바일에 포함이 안됨. 구독자 0명이어도 라이브 가능! 인터넷 때문에 너무 느릴까 걱정, 배터리가 닳아서 꺼질까 걱정되어서 미리 집에서 1~2시간 라이브 틀어놓고 테스트도 해봤다. 긴 삼각대와 작은 삼각대 (테이블 위에 놓고 할까 봐) 둘 다 사서 가져갔는데 역시나 긴 삼각대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하니까 위험해서 어려웠고 테이블 위해 작은 삼각대를 놓고 했다. 그냥 2시간 내내 켜놨음 ㅋㅋ 나중에 확인해보니 라이브는 조회수가 260회 정도 나왔으니 100명 이상은 보신 것 같았다. 1~2시간 동안 자유롭게 오시게 했더니 유튜브를 보며 상황을 파악 하고 오시기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테이블 위에 놓고 다가가서 댓글 읽고 인사도 함 ㅋㅋ + 오른쪽은 새로 만든 유튜브 채널


포토부스

이것도 엄청 고민하다가 불렀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은 계속 올 테고 우린 둘 뿐이니 사진은 한 번에 한 팀이랑만 찍을 수 있을 거라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별도로 포토부스도 불렀다. 직원분들이 나와서 뒷배경 설치해놓고 스티커 사진처럼 찍어주신 후에 하객들한테 인원별로 사진도 다 주고 그 사진을 방명록에 붙여서 메시지도 쓰게 유도해주셔서 소중한 방명록도 남는 아주 좋은 서비스다. 업체도 굉장히 많았는데 화질 좋고 서비스 좋다는 찰칵 포토부스로 선택! 엄청 만족해서 후기글도 썼다. (사실 페이백 이벤트도 있었음ㅋㅋ)  https://blog.naver.com/yeonjoo33/222108968736


직원 두 분이 나오셨는데 하객분들께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찍으라고 권유해주신 덕에 식이 끝난 후 두꺼운 방명록을 받을 수 있었다. 너무 추억이라 소중.. 친구들도 너무 좋아하며 많이들 찍었다. 성공적!



답례품은 내가 마셔본 와인으로


코로나 땜시 식사를 대접하지 못하게 되었고, 웨딩홀에서 그 인원 식사 대신 답례품을 준비해준다고 하셨다. 예시로 보내주신 와인, 홍삼 등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난한 와인으로 하되 이왕이면 내가 마셔본, 맛있는 와인으로 드리고 싶어서 웨딩홀에 문의했더니 다행히도 계약된 업체에서 그 와인도 납품하신다고! 그래서 150개 정도 식비 대신 주문하고 (최저 인원 150명이었음) + 혹시 몰라서 마트 와인코너에서 추가로 50병을 구매했다. 2만 원 이하로 무난하게 맛있는 화이트 와인 2종! 


개인적으론 우측에 보르도 블랑이 더 맛있고 사람들도 오른쪽 와인을 더 좋아했다. 

답례품으로 받은 와인 맛있다고 나중에도 계속 친구들이 그 와인 마실 때 인스타 스토리에 태그 해줬다 너무 뿌듯.. 식사도 없는데 답례품 못 받는 사람 생기는 게 너무 싫어서 200병 준비했는데 예상대로 그만큼은 안 와서 4~50병 남은 것 같다. 친구들 선물도 주고 나도 계속 집에서 두고두고 마시고 있음 ㅋㅋ



조화 부케와 직접 그린 청첩장 그리고 영상


앞에서 얘기했듯이 모든 식순을 생략했기 때문에 부케도 던지지 않았다. 부케 던지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음.. 그래서 그냥 내가 원하는 조화 부케로 주문했고 (요샌 조화 이쁘게 만들어주는 곳이 많은 듯 bb) 인스타에서 찾은 곳인데 넘 예쁘게 잘 만들어 주셨다. 부모님 코사지도 같이 주문함! https://www.instagram.com/kkotnori_flower/


처음에 왼쪽 사진처럼 만들어주셨는데 초록 초록한 야외 행사다 보니 좀 더 들꽃 같은 느낌을 원해서 수정 요청드렸더니 찰떡같이 잘 알아듣고 고쳐주셨다. 배송도 안전하게 빨리 옴. 생화도 예쁘긴 한데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화로 했고 그 조화는 이제 집 장식으로 쓰이고 있다. 

열심히 들고 있었음



그리고 이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지만 우리 사진을 그리게 됐고 그리고 나니 청첩장에 썼고 그러고 나니 통일하고 싶어서 포토부스 템플릿까지 만들게 된 커져버린 사건.. 






이제 다 얘기했나.. 


전반적으론 무척 재미있었다. 힘들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제일 좋았던 건 보통 신부 대기실에 있으면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지나가버리는데 최소한 누가 왔는지 모두의 얼굴을 봤고 인사를 나눴고 사진도 찍었다 :) 감사함도 표현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또 은근 오글거리는 식순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부모님과의 포옹이나 축가 등도 모두 생략해서 울 것 같은 순간이 없어서 좋았다. 싱글벙글 왈가닥 신부였음. 아! 그리고 10년째 연애 중 이었다보니 서로의 지인을 대부분 알고 얼굴을 몰라도 이름은 들어본 사이라 함께 인사할때에도 너무 좋았다는 점 ㅎㅎ 


아쉬웠던? 건 생각보다 사람들이 약 2시간가량의 시간 동안 나눠서 와주셔서 굉장히 오래 서있었다는 것.. ㅋㅋ 물론 우리도 힘들었지만 그게 아쉽진 않고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도 졸지에 2시간 동안 서있었다는 것이 약간 아쉬웠다. 앉으실 수 있도록 의자도 마련했는데 막상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아서 조금 죄송스러웠다. 물론 다들 즐거우셨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했다. 


드디어 결혼식이 끝났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서 정말 무슨 오프라인 행사를 하나 치른 것 같은 느낌이지만 생각보다 더 즐거웠고 뿌듯했고 감사했고 너무 많은 마음을 받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결혼이란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이고 평생 갚으며 살아야 하는 축복을 받는 일이란 것을 하기 전엔 잘 몰랐다. 


11월로 식을 미룬 친구들도 무사히 식을 잘 치렀는데 며칠 전부터 다시 300명대로 들어서더니 이제 또 1.5단계에 접어들었다. 식을 앞둔 분들의 걱정과 한숨이 늘어갈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보며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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