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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Apr 20. 2023

UXer들의 회식

몇일 전에 여의도로 파견나가 있는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UX컨설팅의 특성상 본사에서 주로 과제를 진행하지만, 올해는 여의도/서울역 등으로 많은 직원들이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훈련이 힘든 군대의 내무반 군기는 오히려 좋다는 말이 있듯이 라이트브레인 컨설팅그룹은 업무 난이도가 '지독할 정도로' 높다보니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일행들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모두 모이고 술도 한잔씩 들어가니까.. 각자 저마다의 고민거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이런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의 고민과 갈등이 대화 소재로 등장하면.. 나이적은 사람보다는 나이많은 사람이, 간접적으로 주어들은 사람보다는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 가볍게 스쳐지나간 사람보다는 심각하게 그것을 겪은 사람의 말이 많아지기 마련인데.. 재밌게도 저희 회식 자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심리학을 전공한 친구들이 먼저 나서서 분석을 시작합니다. "그건 제가 볼 때 말이죠. 정서적인 측면에서.."하는 식으로 말이 시작됩니다. 심리 용어들과 실험 사례들이 그 말속에 등장합니다. 그러면 분위기가 조용해지고, 그래 너 잘났다 하고 싸해지면서 대화가 중단될 것 같지만... 우습게도 이때부터 진짜 대화가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서서 앞서 말한 사람의 말에 더 구체적인 사례를 덧붙이거나 깊이있는 논증으로 이어갑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같은 논조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으면 그렇게 결론의 화합이 이뤄질 것 같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른 주장이 슬며시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이럴 수도 있잖아요?", "앞서 말한 부분은 오히려 확증편향인 것 같은데.."하면서 거꾸로 반증을 시도하는데 그럴 때도 과학적인 개념이나 사례들이 반증의 재료로 활용됩니다. 


누구도 '내가 겪어봐서 알아'라거나 '나도 어릴 때는 그랬는데'하고 경험과 연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개인 경험의 협소함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항상 경계하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누군가 경험과 연배를 내세우면 그 때는 분위기가 싸해집니다. 


이렇게 객관적인 개념과 사례들을 가지고 주장과 반박이 진행되다 보니까 서로 기분나빠할 일도 없습니다. 표면적인 위안이나 겉치레에서 이야기가 그치지 않으니까 애기를 꺼낸 당사자도 좀 더 깊이있게 고민하는 계기가 만들어집니다. 본인이 처해있는 고민과 갈등을 더 관조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타 그룹(라이트브레인은 3개의 부서가 있고, 각 부서를 '그룹'이라고 부름)에서 온 동료가 뒤늦게 자리에 합류했는데, 우리들만의 그 괴상한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고 연신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 지 주저했습니다. 나쁘게 얘기하자면 우리들은 회식에서조차 진지충들만 모여서 지나치게 학구적으로 일상다반사를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게 우리 내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며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하도 웃겨서 제가 그 점을 지적하고 나서야 자기들도 우스웠는지 서로 돌아보며 겸연쩍어 하더라구요.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대화가 전개됩니다.


B: 어. 나는 평소에 그렇게 하지 않는데..
C: 그건 네가 그런 퍼소나이기 때문에 그래. A는 이러저러한 점에서 너와는 퍼소나가 다르잖아
A: 아니면 B와 제가 같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당시의 맥락이 달라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D: 심리학에서 그런 기제를 다루는 분야가 있는데.. 지금 문제는 아마 이런 식으로 풀이될 수 있을거야
E: 맞아요. 제가 임상심리학에서 겪은 것도 그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G: 나는 Z세대의 그런 성향이 반드시 옳다고 보지는 않아. 일반화되기도 어렵고.. 그건 아무래도 세대적 특성보다는 20대라는 연령적 특성에 더 기인하는 것 같아.
K: 그게 만약에 20대라는 연령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보편적인 사실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그 안에서도 퍼소나가 나눠지고, 주류 퍼소나가 보이는 태도나 행태를 그들 모두가 공유하리라고 보는 것은 과적합의 오류라고 보여지는데?



머리 아프고 재미없게 들리시죠? 


하지만 저는 이들과 이렇게 얘기나누는 게 재미있습니다 ㅋㅋ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겠지만, 여기서는 이게 일상입니다.

누가 나쁘게 보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꾸며내지 않은 자연스러움인데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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