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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Jun 08. 2023

즐거운 강의

저는 1년에 50차례 이상 강의를 합니다. 어떤 강의는 5일 40시간 과정이고, 어떤 과정은 17회 61시간짜리 과정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강의를 많이 하나? 학교 선생님도 아닌데 말이죠.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놀기에도 빠듯한 시간인데 얼마 더 벌려고 강의를 한다고? 그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즐거운 구석이 있기에 이렇게 꾸준히 회사일과 병행하면서 15년동안 강의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강의를 찍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비대면 강의나 PPT를 열고 혼잣말하듯 녹화하는 그런 강의가 아니라, 넓은 스튜디오에서 방송쪽 전문가들의 인도하에 조금이라도 말이 꼬이면 'NG'가 터지는 그런 촬영을 매 주말마다 찍는 중입니다. 색다르지만 힘듭니다. 50분짜리 기존 강의안을 15분으로 압축하는 것도 어렵구요. 괜히 시작했나 후회도 들더라구요. 그래도 누군가 이걸 보고 UX를 배우면 그걸 토대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테고 제가 추후에 그걸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묵묵히 고난의 행군을 가고 있습니다. 


관심도 없는데 회사애서 시켜서, 그냥 교육일수를 채우려고 오신 분들에게 하는 강의는 끔찍하게 힘듭니다. 제 강의 내용은 조금 어렵고 세부적인 내용들을 주로 다루는지라 전혀 문외한인 분들이 듣기에는 버겁습니다. 업무에 적용할 몇 가지 힌트나 얻어가겠다는 분들에게는 지나치게 방대하구요. 요즘 트랜드가 뭐가 있나 궁금해서 오신 분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체계적입니다. 강단에 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피부에 와닿습니다. 


한편으로 매우 즐거운 강의도 있습니다. UX와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밌고 신이 납니다. 저도 모르게 여러가지 사례들을 말하게 되고, 하나라도 더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실습한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 품질이 형편없이 낮아 보이면 용기를 불어넣고 말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면 미주알 고주알 자세하게 얘기합니다. 대화가 지나치게 원론으로 빠질 것 같으면 사례를, 지나치게 파편적인 사례 위주로 빠질 것 같으면 반대로 원칙을 거론합니다. 


저희 회사 이름을 걸고 하는 강의가 제일 즐겁습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초반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해서 그런지 이제는 월,수 저녁시간에 나가는 그 강의가 마치 친구만나러 가는듯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UX에 대한 열의가 굉장히 높으신 L사 대상 강의도 무척 즐겁습니다. H사나 S사도 UX에 대한 열의나 전문성이 무척 높은 편이지만 즐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강의하러 갈때마다 일하러 가는 기분이니까요. L사는 뭐랄까? 좀 더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하다고 할까요? 


사실 UX 디자인이 매우 재미있는 분야인데, 제가 못나서 재미없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장에서 온갖 고초와 다양한 케이스들을 겪었기 때문에 너무 응축된 내용을 전달하려고 욕심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매우 엄격합니다. 어짜피 모두가 다 전문가들이라서 실력보다는 사고력 자체를 키우는 게 목표기 때문에 칭찬보다는 비판이 더 많이 나옵니다. 


언젠가 정년퇴직을 하면 그때도 강의는 계속 하고 있을까? 고민해 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배운 지식은 대부분 현장에서의 필요에 기인해서 획득된 것이라서 그게 AI가 됐든 에스노그라피가 됐든 현장과 떨어지게 되면 생명력을 잃게 될것 같습니다. 그런 자신감, 충만함이 없다면 굳이 강단에 서려고 들지도 않을테구요. 성격상...



배우려는 열의가 없으면 이끌어 주지 않고 표현하려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들어 보였을 때 다른 세 모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반복해서 가르치지 않았노라 
논어 술이(述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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