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그동안 맘먹고 있던 맨발 걷기를 처음으로 실천해봤다. 등산로 초입 벤치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서 신발은 손에 들고 양말은 크로스백에 넣은 다음 거칠거칠한 아스팔트 도로를 십여미터 걸어서 산입구 계단에 마주섰다. 이 정도면 할만 하겠는데? 하고 생각했으나 계단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자 온갖 작은 돌맹이들이 날카롭게 발바닥을 파고 들었다. 신발 신고 다닐 때에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고통(?) 속에서 땅만 쳐다보며 뭔가 날카로울만한 것들을 피해서 산을 올랐다. 계단이나 겨울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놓았을 포대길이 어찌나 황송하던지...
겨우 정상에 올라 숨을 고르고 물 한잔 축이고 나니 내려갈 게 걱정이었다.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에서 발바닥에 가해지는 중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조심 조심 걷느라 신경을 집중한 탓에 몸에 열이 더 오른다. 벤치에 앉아 혹여 생채기가 난 데는 없을까 살펴봤지만 나름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기왕 시작한 김에..'하고 다짐하며 맨발로 다시 내려갔다. 내려간 길은 올라간 길의 반대편으로 흙길보다는 계단이 많다. 가끔 이 길로 올라올 때에는 무슨 이렇게 하염없이 오르막 길만 있나 푸념을 해댔지만, 맨발로 내려가는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셋쩨가 아빠는 반백년 살았다, 자신보다 3배나 나이가 많다고 놀리는 나이가 됐는데도 발바닥은 이렇게 연약하다니... 모진풍파에 마음이 단련되고, 정신을 날카롭게 벼리고, 몸에 군살이 붙는 것을 용납치 않아 왔는데.. 정작 태초의 우리 선인들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하던 일상생활에 나는 큰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내려가면서 계속 웃음이 났다. 유튜브에서 본 아프리카, 동남아 벽지의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습도 생각났다. 하지만 등산은 역시 신발이 중요해 라는 마음도 떠나보낼 수 없었다.
산을 내려와서 다시 한참을 맨발로 걸었다. 하천변을 따라서 난 우레탄 포장도로는 산길에 비하면 우스울만큼 난이도가 낮았다. 평소에는 가끔 걷는 도중에 빠른 속도로 파워워킹을 하거나 런닝을 하기도 했었는데 맨발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 버리거나 어디서 날라온 유리 조각 하나도 지금의 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집으로부터 5km도 넘게 왔는데 발에서 피라도 난다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여기서 누군가의 도움을 청한다면 그건 또 얼마나 민폐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반환점에서 발바닥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울긋불긋하긴 했어도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자 싶어서 발을 깨끗이 털고 양말과 신발을 차례대로 신었다. 그리고나서 서자마자 어찌나 편하던지. 신발이라는 게 굉장한 문명의 이기처럼 느껴졌다. 발을 착지할 때마다 온몸에 느껴지는 그 부드러운 쿠션감이 기분좋은 호르몬을 분비시키는 것 같았다. 몇백미터 가서는 그 기분조차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지만..
맨발 걷기가 왜 좋다던가? 생각하며 일요일 한낮의 운동을 그렇게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