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노스탤지어

이별가사가 아름다운 이유.

by 남다름

열렬히 사랑했다 착각하고 머지않아 남이 된다.

사랑해, 라는 못된 늪에 빠져 약물 중독자처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잠깐의 설렘에 이성을 잃는다.

평생을 바쳐 사랑할 것처럼 굴었으나 머지않아 이별을 맞이한다.

헤어짐이란 그렇게 쉽고 간단하다.


보통의 이별은 마치 싸구려 B급 영화와도 같다.

어떤 대목에서 슬픈지, 어떤 대목에서 심정이 무너지는지 그 누구도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결론에 급히 도달할 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너져 내리며 눈물만 펑펑 쏟는다.

그게 보통의 이별, 그러니까 바로 나의 이별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들은 모두 내게서 등을 돌렸다.

내가 사랑했던 그들은 언제나 배가 되도록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분명 값지고 소중한 건 난데 어째서인지 그들은 그런 귀중한 날 잃어가는 것에 대해 전혀 슬프고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 나조차도 내가 귀해 보이지 않았다.

그게 바로 사랑해, 라는 못된 늪에 빠져 이성을 잃는 순간이다.

언젠가 나를 잃었을 때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날 대한 그들을 잃었을 때의 나보다 더 슬펐을까, 후회스러웠을까, 한 번쯤은 그리워했을까.

이런 사소한 생각들이 들 때면 조금은 슬프고 비참하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언제나 내 손을 쉽게 놓아버린다.

그래서 나의 이별은 싸구려 B급 영화다.


어느 날 문득 나에게 물어보고 싶어 졌다.

혼자라서 외로운 건지, 다른 사람과 함께라서 외로운 건지.

나는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혼자라서 외로운 걸까, 함께여서 외로운 걸까.

함께하면 덜 외로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서 불어나는 이 외로움은 언제쯤 사라지게 되는 걸까.

엄마는 늘 외롭다고 했다.

환갑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는 평생을 외로이 산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되고 마는 걸까.

혼자라서 외로운 걸까, 아니면 그저 사람이라 외로운 걸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몇 번의 싸구려 영화를 더 찍어야 얻게 되는 걸까.


이별에 도달한 나는 결국 슬플 것이고, 몇 번이고 무너져 내릴 것이고, 침대에 누워 바라본 천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내려 나를 짓누를 것이고, 그러다 끝내 슬픔이 툭 터져버려 엉엉 울고 말 것이다.

그럴지언정 나를 아프게 하는 가시를 가슴 한가운데에 박아두고 모른 척 살 수는 없다.

언젠가 뽑아내야만 할 가시.

장미에게 있어야 할 가시가 해바라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건 장미에게 가야 하고 해바라기는 타오르는 태양과 마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울리지 않아 헤어졌다, 라는 말이 성립하게 된다.

이별을 글로 적으면 결국 그렇게 예쁘게 적히고 마는 것이다.

마치 주체할 수 없는 내 슬픔과는 별개인 것처럼.

그래서 모든 사랑 시와 노래 가사가 아름답다.

추악하고 눈물 젖은 베개는 글자 밑 저 어딘가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달랐다.

그래서 우린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린 헤어졌다.

그렇게 이별을 맞는다.


쉽게 생각하면 그 사람 자체가 그리운 것보다 사실은 그와 함께 머물렀던 내가 그리운 것 같다.

별 것 없는 농담, 서로만 이해하는 장난, 시답잖은 이야기에 대한 무구한 관심.

그런 따뜻한 관심에 목마른 사람들이 결국 이별 앞에 무너지고야 만다.

사랑이란 이름의 노스탤지어.

나는 앞으로 맞을 이별을 이렇게 정의하려고 한다.

그 시절의 강렬한 향수에 대한 슬픔이라고.

꽃이 피는 봄에도, 녹음이 짙은 여름에도 이별은 찾아온다.

눈부신 계절에 맞이한 이별에 아름답고 찬란하던 그 순간들이 문득문득 끼어들어와 날 슬프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별이 그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이유, 바로 우리가 그 시절의 강한 향수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이별을 맞아 가슴 한가운데 과녁이 생겼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토록 아픈 이별일지라도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될 것이고, 또 다른 이별을 맞게 될 것이다.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의 나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고, 그 시절로 애타게 돌아가고 싶을지언정.

인생에 꽉 막힌 엔딩이란 없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갖는 개인차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그에게 지구로 다시 함께 가겠냐고 물었어.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中, 김초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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