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기 위해 창가에 다가섰다. 희뿌연 운무에 가려진 하늘에는 희미하게 깜박이는 별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다. 꿈을 가득 안고 밤하늘을 바라보면 여름 밤하늘에 진주처럼 촘촘히 박힌 영롱한 별들이 우르르 쏟아질 듯 빛을 발하던 어린 시절의 별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구름에 가려져 흐릿한 빛만 눈에 비친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아래 교회 불빛이 탑 위에서 세상을 향해 외롭게 빛을 쏟아내고 있다.
요양원 야간근무는 날이 바뀌어 새로 시작되는 새벽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바쁘게 째깍거리던 시침이 잠시 멈추어진 것 같은 순간,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지만 개운치 않다. 밤 근무시간 중에 두 시간의 취침시간은 법적으로 허용된 휴식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잠을 잔다는 개념보다는 쉰다는 표현이 맞다. 수면실에서 주어진 두 시간 동안 편안하게 자는 건 불가능하다. 잠시 누워 있다가 깜박 잠든 사이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면 멈췄던 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근무교대를 한다. 교대 요양보호사에게 편히 쉬고 나오라는 말을 하지만 편히 못 쉬기는 교대자도 마찬가지다. 어르신들 방 침실 온도는 따뜻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거실은 냉기가 감돈다.
푸른 조명등 사이로 로비한쪽에서 어둔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까이 가봤더니 70대 중반의 건장한 M이 우적우적 걷고 있다. 잠 안 자고 뭐 하느냐고 묻자 운동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대답한다. 넓은 중앙 홀은 로비와 휴게실이 있어서 대상자들이 워킹할 수 있게 청 테이프로 선을 그어 붙여놔서 그는 선을 따라서 걷고 있다. 그에게 낮과 밤은 별 의미가 없다. 시간에 관계없이 아무 때고 자고 싶으면 누워서 자고, 걷고 싶으면 침실에서 나와서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걷는 자유인이다. 처음에는 그에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고 권면했다. 남들 자는 시간에 움직이지 말고 자라고 권해도 틀에 박힌 생활이 되지 않은지 영 적응하지 못했다. 억지로 자유를 구속하기보다는 본인의 생체리듬대로 생활하라고 자율성을 인정해 주었더니 오히려 편안한 모습이다. 힘이 장사인 그는 가끔 자기에게 이유 없이 욕설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동료에게 말릴 틈도 없이 주먹을 날린다. 그의 주먹세례에 비바람에 감 떨어지듯 바닥에 나뒹구는 동료의 모습을 본 적 있다. 그런 그도 걸림돌이 없으면 편안해 보인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서 편안한 건지, 아니면 젊은 날의 기억도, 본인이 처한 현실의 문제도 다 잊었는지 누군가 시비를 걸거나 관여하지 않으면 그의 의연함은 도인 같은 모습이다. 방마다 순회하며 어르신들이 이불을 차고 주무시지는 않은지 점검하기 시작한다.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옷을 겹겹이 껴입고 방마다 온도점검을 한다. 혹시 방 온도가 춥지는 않은지, 열난 어르신은 없는지 체크한다.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물수건으로 세안을 도와주고 이동변기 이용한 분들의 소변도 치우기 위해 00 할머니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문을 닫는다는 게 예기치 않게 “쾅” 소리가 났다.
“손모가지가 부러졌나? 문도 제대로 못 닫고 다녀?” 00 할머니의 칼날 같은 앙칼진 목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아침부터 댓바람에 욕지거리를 쏟아놓는다.
“어르신, 예쁜 얼굴로 말씀을 왜 그리하세요. 주의할게요. 죄송합니다.”
“뭐? 말버르장머리? 잘했다고 지금 대드는 거야?”
“어르신 화 푸세요. 말버르장머리라고 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했어요,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 나오는데 가슴이 쓰렸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지들이 돈 벌러 나왔으면 똑바로 해야지 뭐 이딴 것들이 있어.”
들으라는 듯 뒤통수에 대고 소리 지르는 그녀의 말은 심장을 겨누는 화살처럼 날카롭다. 그녀는 자기의 돈으로 요양보호사를 먹여 살린다고, 요양보호사의 생존권을 대상자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아침시간에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누구야? 누구 맘대로 왜 문 열어놨어.” 요양보호사 S가 방안공기가 탁하다고 공기순환 시킨다고 미닫이문을 열어놨더니 바깥공기가 들어온다며 고함을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동료요양보호사들이 뛰어갔다. S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녀는 S를 노려봤다. 자기 허락 없이 문 열었다는 이유로 S는 삿대질에 폭언에 가까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S가 분위기를 직감하고 나를 잠시 나가 있으라고 내보냈다.
아침 식사시간이 되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문밖에서 숨을 고르고 태연하게 밥상을 가지고 들어가서 상을 펴 드렸더니 자기 집에서 가져온 게장이 없냐고 물었다.
냉장고에서 개인반찬통그릇을 뒤져서 얼른 찾아다 주었다.
“어휴 있는 반찬도 못 찾는xxx....”
밥상 위에서 험한 욕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왔다. 게장그릇을 식탁 위에 놓고 분풀이하듯 쾅쾅 두드린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와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깊은 심호흡을 했다. 나를 다스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어떤 경우라도 사회적 약자인 대상자와 마찰을 빚지 않으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예전 근무하던 요양시설에서 퇴직할 때다. 마지막 근무 마치고 나올 때 내가 돌보던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마치 가족을 떠나보낸 것처럼 언제 다시 볼 수 있느냐며 손을 붙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린 어르신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잡은 손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이별의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 집에 와서 명 00 할머니가 선물로 준 무지갯빛 브로치를 꺼냈다. 근무 끝났다며 인사하러 다닐 때 명00할머니가 내게 준 선물이다.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는 사물함에서 조그만 액세서리 통을 꺼냈다. 가지고 있는 브로치는 자기가 착용할 일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했었다며 이별선물이라고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브로치는 무지개 빛깔처럼 화려하게 여러 색깔을 쏟아내며 불빛에 반짝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주색스카프를 명00할머니 목에 걸어드렸다. 순간 그녀의 눈에 반짝 이슬이 맺혔다. 외출할 때 사용하겠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브로치를 꺼내서 코트칼라에 달았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은 봄눈 녹듯 스르르 녹았다. 영롱한 무지갯빛브로치가 깊은 시름에 잠긴 마음을 환히 밝혀주었다. 명00할머니도 밖에 외출할 때나 마음이 울적할 때는 자주색스카프를 하고 있을까? 마음속을 휘감았던 먹구름이 걷어지는 순간이었다. 불빛에 화려하게 빛나는 브로치가 어린 시절 별빛이 흐르던 아름다운 밤하늘의 전경처럼 눈앞에서 밝게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