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서 전화가 왔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의 기분이 어떻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언니, 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봐”
“무슨 일 있었어?”
그녀에게 기분 언짢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후에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깐씩 틈을 내서 전화하다가도 환자 석션 해야 한다며 긴 통화는 하지 않은 터라 상황이 이해가 됐다.
J는 입주 요양보호사로 일 해왔다. 두 딸은 결혼해서 살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일하던 요양원에서 나와서 선택한 일이 가정 입주요양보호사였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외로움 때문인지 가끔씩 전화해서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의 어려움을 푸념하곤 했다. 건강보험 공단 지원이 있어도 삼백만 원이 넘는 돈을 요양보호사에게 지불하는 환자와 환자보호자는 요구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상자가 요구한 대로 케어를 하다 보면 수시로 받은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가 없다. 대상자들은 대부분 노인혈관 질환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치매로 인해 공간과 현실 구분이 안 되는 노인들이다. 돌보던 대상자가 경제적 사정으로 요양원으로 가면 요양원에 보내고는 가족을 잃은듯한 허탈감에 며칠씩 힘든 날을 보내곤 했다. 다시 일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강남 부자동네로 간다면서 홀연히 떠났다.
그녀가 꼭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비로 쪼달리는 생활도 아니기 때문에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몸을 혹사하지 말고 어지간하면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취미 생활도 하고 쉬는 날은 운동도 하면서 몸 관리도 할 수 있는 요양원을 알아보라고 했지만 입주요양을 하면 출퇴근 근무하는 부담감이 없고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일하는 시스템보다는 마음 복잡하지 않게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을 꼽았다.
다시 전화가 왔다. 통화할 수 있는 시간도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몸이 힘든 거야 어차피 각오하고 온 일이라 참을 수 있지만 보호자들로부터 받은 냉정한 대우가 참기 어렵다고 했다. 환자인 할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할머니는 환자는 아니지만 할아버지를 케어할 힘이 없어 가정입주 요양보호사로 함께 살면서 자연스레 집 살림까지 맡게 된 모양이다. 자녀들은 사회 상류층으로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산다 했다. 바로 옆집에 며느리가 살면서 가끔 들러서 할아버지를 보고 가는 정도라 했다.
“언니, 오늘 할아버지 생신이야 자녀들이 다 한자리에 모였어 그런데 나보고 방에 들어가 있으래요. 자기네끼리 할 말이 있나 보다 하고 방에 있는 동안에 케이크 커팅하면서 생일 축하 하는 말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생일인 줄 알았지. 할머니 큰아들이 집에 가려고 한 것 같아서 인사하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모두 간 게 아니고 아들 혼자만 가려고 일어나 있었어. 식탁 위에 잘라놓은 케이크가 있어도 케이크 한 조각 먹어보란 소리 안 하데요. 돈 받고 일하는 여자라고 그 자리에 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불편한 자리에 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세상살이가 이렇게 냉정한 곳도 있나 싶더라고.”
가족들이 할머니 모시고 식사하러 나가더니 할머니가 집에 들어오면서 뷔페에서 직원 몰래 싸왔다며 닭다리 세 개를 선심 쓰듯 내놓더라며 쓴웃음을 웃었다. 속이상해서 하루 종일 밥도 안 먹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생활을 함께한 요양보호사가 면죄받지 못할 죄인도 아닌데 굳이 그런 식으로 대할 건 뭔지 그들의 심리가 궁금하다고 했다.
“투명인간 취급당하니까 더 이상 있기가 싫어. 내가 할아버지 케어 하면서 휠체어를 한 시간 이상씩 하루에 세 번을 태우는데 면역 약한 할아버지가 욕창이 생기려고 하길래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가정간호사와 며느리가 얘기할 때 내가 휠체어 너무 많이 타도 욕창 생긴다고 말했는데 네가 뭘 아냐는 식으로 무시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있는 집 사람들이어선지 냉정해”
그녀는 보호자한테 인격적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요양보호사 구할 때까지만 있겠다며 다른 요양보호사 구하라고 말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가진 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돈으로라도 자기 신분을 과시하려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J는 집안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지 않고 갑의 위치에서 을에게 정서적인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J는 보호자들이 요양사에게 내가 돈을 주기 때문에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환자와 요양보호사는 서로 의지하고 돌보는 가족 같은 분위기로 환자를 케어하는데 기쁜 마음으로 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뜨거운 화두가 갑질이다. 전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로 돌아간 것 같다. J는 자기는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돌보려고 하는데 보호자들의 태도에서 실망했다며 돈도 좋지만 자존심이 뭐길래 분위기가 살벌한 집에서 생활하는 건 하루 이틀 아니고 견디기 어렵다며 하소연을 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돈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기쁜 마음으로 일 한다면 환자에게 정성과 사랑이 실리겠지만 사무적으로 하는 일이라면 환자의 중심에 돈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불편할 수도 있다. 환자와 요양보호사는 돈으로만 계산된 자리는 아니다. 돈이 인간의 존엄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요양보호사가 비록 자기들의 수준에 못 미치더라도 한 집에서 생활한 이상 서로 마음 상하게 할 필요까지는 없어야 할 텐데 돈의 가치로 사람을 대한다면 요양사도 환자를 돈의 가치로만 판단하고 돌볼 것이다. 인정은 메마르고 인성은 실종되고 사람 사는 세상이 돈의 가치로 매겨지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