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 꽃 Apr 29. 2024

멀쩡한 사람에게 웬 장갑?


조용한 로비에 굵직한 남자의 화난 음성이 바위처럼 굴러 떨어졌다. 

“팀장 어디 있어, 팀장 나와!”

무슨 조직 폭력배가 왔나 싶었다. 어르신들 오후간식을 나눠주던 나는 시끄러운 쪽으로 달렸다. 영남 할머니의 사위가 소리치고 그 옆에는 딸이 떡 버티고 서 있다. 딸은 멀쩡한 사람에게 손에 장갑을 끼워 놓으면 어떡하냐며 흥분된 모습이다. 사위의 행동이 무례하다고 느꼈지만 자칫하면 싸움으로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다들 그의 표정만 지켜볼 뿐이다.  

영남 할머니는 남편 되는 영식 할아버지도 옆 병실에 입소해서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처음에 2인실 방을 같이 사용하게 했는데 가끔 영식 할아버지의 폭행이 있어서 2층으로 보냈다. 젊었을 때 습관화된 기질이 자기도 모르게 나온다. 같은 방에서 말이 통하지 않은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속이 터질 것 같다며 흥분을 참지 못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내를 후려칠 것 같은 포즈를 취한다. 그의 두 주먹은 바위처럼 단단해 보인다. 어깨를 벌리고 폼을 한껏 잡고 걷는 모습과 그의 걸음걸이에서 조폭의 기질이 엿보인다. 조그마한 키에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한껏 멋을 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요양보호사들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무례하게 굴지는 않고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같이 있으면 아무 생각 없는 아내를 보면 속이 타버릴 것 같다는 남편 때문에 급기야 아내를 눈에 보이지 않은 2층으로 내려 보냈다. 내가 2층에 있을 때 거의 움직이지도, 말도 못 하는 영남 할머니는 침대에 실려 내려왔다. 비록 움직이지 못해도 그녀의 큰 키는 팔등신 미녀였다. 서구적인 미모는 상당한미인 형이다.  서서히 몸이 회복되자 휠체어에 의지해서 식탁에 나와서 여러 동료들과 식사를 같이 하게 했다. 식판이 나오면 남의 식판을 끌어다가 손으로 밥을 집어먹고는 했다. 말을 해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은 않고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정도였다. 팔십도 안 된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중증치매에 걸려버린 아내를 젊어서 총명할 때의 옛 생각만 하는지, 가끔 있는 남편의 폭력의 위험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떼어놓아 자리를 옮겼다. 

일 년 가까이 떨어져 있던 부부가 다시 재회를 했다. 내가 3층으로 올라오면서 그녀와 다시 만났다. 그녀는 신체적으로는 예전에 비해 분명 많이 호전된 상태다. 처음 말도 못 했던 그녀는 자는 시간 빼고는 하염없이 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같이 생활하는 동료환자들에게는 엄청난 소음공해였다. 지치지도 않은지 끊임없이 부르는 그녀의 슬픈 노랫소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남편이 있는 3층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도 남편을 알아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아내를 보자 반가운지 끊임없이 간식을 챙겨주는 영식 할아버지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못 하던 아내는 잠드는 시간 외에는 계속된 노랫소리에 주변동료들의 시끄럽다는 항의가 계속되자 조용히 하라는 남편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흘러간 유행가를 불러댄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려는 영식 할아버지를 붙잡았다. 홧김에 한 대 내리치면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다. 아들에게 전화해서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젊어서 같이 고생하면서 살던 과거를 생각하면 아내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그런 과격한 행동을 해서 일이 해결되지는 않잖냐며  달랬다. 그는 젊은 시절 주먹세계에서 생활했다는 말이 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양팔에는 문신이 그려져 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가 안 돼 보였는지 시간만 나면 두유나 바나나를 한 움큼씩 갖다 먹이는 부부애를 발휘하다가도 옛 기질이 한순간에 나온다. 

문제는 시간만 나면 기저귀 속에 손을 넣어서 변을 주물러서 옷이나 얼굴에 범벅을 한다. 감당이 안 돼서 식사 후에는 되도록 장갑을 끼워둔다. 환자가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대상자만 지키고 있을 수 없고, 변을 주물러서 악취를 풍기면 여기저기서 불평이 쏟아지기 때문에 끼워둔 장갑을 보고는 딸과 사위가 난리를 친다. 입소할 때 상황에 따라서 장갑 착용동의를 다 받고 한 일이지만 ‘내 어머니는 불편해서는 안 돼’라는 논리다. 급기야 팀장이 사건 경위를 말했지만 멀쩡한 사람 장갑은 왜 끼냐는 항의에 주의하겠다는 말로 끝을 내렸다. 딸의 말대로 멀쩡하다면 변을 주무를 이유가 없고 장갑 착용 이유도 전혀 없다.


식당에서 저녁 식사하고 올라오자 웬 냄새가 이리도 고약하냐며 주변 어르신들이 난리다. 어떤 보호자는 손으로 코를 잡으며 도망치듯 내려가 버린다. 그녀는 손에 겨자를 바른 것처럼 분변을 문지르고 바닥에 변을 투척했다. 입고 있는 옷에도, 이불에도 노랗게 묻혀 놨다. 딸이 다음에 또 와서 장갑 끼웠다고 거칠게 항의할 것에 대비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촬영을 했다. 부원장을 불렀다. 이 환자는 장갑을 착용 안 하면 이런 상황이 계속될 텐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으니 틈만 나면 항의하는 딸을 설득시키든지 아니면 보호자나 다른 어르신들 항의하지 않을 방도를 구하든지 하라고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모르는 부원장도 틈만 나면 트집 잡는 보호자에게 화가 나 있는지라 내가 캡처해 준 사진을 딸에게 전송해서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특별대우를 바라는 보호자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도저히 같이 생활할 수 없어서 선택한 요양원에서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정해진 인원이 관리해야 하는 환자보호자의 욕구를 다 채울 수는 없다. 

한참 있다 사위한테 미안하다고 자기네 들이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서 한 말이니 이해해 달라는 말을 하면서 원래 장갑 낀 사실도 알고 있지만 짧은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작가의 이전글 발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