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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련 Dec 26. 2019

인연이 좀 남다른 집에 삽니다만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혼자는 천직입니다만』북오션 출간 전 연재 ②

독립하기 일 년 전. 평범하기 그지없던 어느 날 아침이다.

나는 노트북과 여벌 옷 하나를 챙겼다. 가출을 결심한 터다. 뭐어, 나이 마흔에? 내가 생각해도 기가 차고 코가 막혀 웃음이 터질 일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해할 수도 있다. 마흔에도 가출할 수 있지. 육아 스트레스를 받아서거나 고부갈등 그것도 아니면 남편과 다퉜다면. 그래도 엄마가 애 두고 가출을 하는 건 아니라고 완곡한 설득을 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내겐 그 어떤 것도 해당사항이 아니다. 나는 비혼이다. 내 마흔의 가출은 그래서 쌍수 들고 환영해야 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 나이 먹도록 독립을 안 했다는 건데.

아무렴, 가출도 독립이라면 독립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그날에 벌어졌다. 내가 노트북과 여벌 옷 짐을 챙기던 그날 아침에. 주방에 있던 언니가 조카와 함께 쓰는 내 방으로 쳐들어왔다. 이불속에 있던 나는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았다. 부모의 매도 맞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언니의 화를 침묵으로 감내했다. 부모 밑에서 살 때도 그랬지만 결혼한 언니의 집에 얹혀사는 동안에도 나는 조용한 동생이었다. 집안에서는 어떤 큰소리도 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여기며 지내왔다.

내가 긴장하고 날을 세워야 하는 곳은 가족이 있는 집이 아니다. 밖에 나가서야 할 말은 한다지만 집안에서는 내 생각과 주장을 앞세우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만큼은 평화롭고 싶었다. 언니와 형부 그리고 조카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편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나와 함께 사는 가족과 언성을 높이며 신경을 긁어댈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자매끼리는 곧잘 다투기도 한다지만 적어도 언니와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돌아보면 부모와 살았던 날보다 언니와 살았던 날들이 내겐 더 길다. 내겐 또 다른 엄마나 진배없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언니에게 백만 원을 요구했던 적이 있다. 국문학은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담임에게 쓴 편지 한 통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내가 국어국문학과를 가게 된 배경이 거기에 있지만 묻어둔다.

그때의 나는 전공과 상관도 없는 패션디자인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았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 답도 없다. 아무리 봐도 돈 나올 구멍은 없고 병원에 다니던 언니가 그래도 만만했다.

"그 많은 돈을 뭐에 쓰려고?"

"내 인생에 투자를 좀 할까 해."

참 겁도 없다. 무슨 배짱에 그런 사기꾼 같은 말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랬음에도 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네 인생에 고작 백만 원밖에 투자를 안 한다고?"

헉! 언니는 내 생각보다 배포가 컸다. 그 당시로 대학 등록금의 두 배가 넘는 돈이었으니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언니는 무슨 마음인지 내게 구구절절한 토를 달지도 않고 학원 등록금을 내줬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의류학과 학생들이 있는 강의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의류업계와 전혀 상관없는 글쟁이가 됐지만 말이다. 그때는 왜 그토록 그것이 하고 싶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학을 마치고는 결혼한 언니의 신혼집에 안착했다. 언니는 몇 해만 데리고 있으면 내가 결혼해 나가겠지 생각했을 것이다. 함께 사는 날들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언니는 형부와 뜻이 안 맞아 다툼이라도 하는 날엔 결혼하지 말라고 조언했고 둘의 사이가 좋을 때면 어서 결혼하라고 나를 종용했다. 아무튼 나는, 마흔이 되도록 형부와 조카 둘이 있는 언니의 집에서 북적거리며 지냈다.      

그날. 그러니까 언니의 노여움이 나를 향한 그날 말이다. 울컥한 감정이 불쑥 솟기도 하는 그 순간처럼 언니의 노여움이 급작스럽게 솟구쳤다. 마음은 변덕쟁이고 스스로 달래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

언니의 화를 나는 그렇게 내 멋대로 해석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가 뜻밖의 내 감정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가출은커녕 사춘기 반항이 뭔지도 모르고 지나간 답답한 인생이라면 인생이다. 어른이 되지도 못한 채 공짜라고 넙죽넙죽 받아먹은 내 나이가 사달을 낼 줄은 정말 몰랐다.   

언니의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나를 비참함으로 몰아넣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당장 필요한 것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내 마흔의 가출은 그렇게 이뤄졌다.


 



마흔의 가출과 특별한 집과의 인연이 궁금하시다면 곧 출간될『혼자는 천직입니다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S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 [혼자는 천직입니다만]

차례는 있으나 연재의 내용은 순서와 다르고 내용도 제 임의로 선택해 올립니다.

이야기 전체가 궁금하시다면 출간본으로 만나보실 있습니다.

제게 행복은 좋은 것이거나 기쁨의 순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상태일 것입니다.

평온한 행복도 있지만 긴장된 상황의 행복도 있다는 걸,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상황에서의 행복도 있다는 걸,

행복의 그림자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살면서 알아갑니다.    

소설 같은 에세이, 그 안에 담긴

저만의 유별나고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추천해 드립니다.


하나 더, 사진은 이미지용으로 글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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