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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련 Dec 30. 2019

일인가구 와이가 사는 그곳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혼자는 천직입니다만』북오션 출간 전 연재 ④

출판사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동료 작가 K와 함께 마포구청역으로 가고 있었다. 오랜만의 담소를 거리에 점점이 흘려놓으면서.

동네가 아닌 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동네에서 나는 낯익은 얼굴과 조우했다.

"앗, 와이씨! 이렇게도 만나네. 와아!"

나는 반가운 마음에 와이의 길목을 덥석 막아선다.

몇 년은 족히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와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당시 와이는 갑상선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회사를 관두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날 작정이었는데 갑작스레 암이 발견돼 무산됐다며 담담하게 웃어넘겼다.      

와이와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한국사보협회 팸투어를 통해서였다. 지자체 홍보가 성행하던 시절, 주말이면 팸투어를 통해 전국을 여행했다. 거기서 와이를 만났다. 일이 년 팸투어를 따라다니다 다른 일들이 늘어나면서 여행은, 와이와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그러다 연락이 닿아 만난 와이는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계획을 털어놓더니 또 금방 다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와이는 그 후 암수술과 더불어 자신의 병구완에 들어갔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러 길거리에서 와이를 만난 것이다.  

"건강은? 수술은?"

나는 오랜만에 조우한 와이의 기색을 살피는 동시에 물었다

"보다시피 멀쩡해."

와이는 하얀 대문니를 드러내며 화사하게 웃었다.

전보다 좀 핼쑥해진 얼굴이었지만 와이는 여전히 밝았다. 회사에 복귀했다는 말에는 마음이 놓였다.

엄마와 둘이 살던 와이는 병구완을 끝내고 독립했다. 그것도 내가 사는 이웃 동네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와이와 나는 또 헤어졌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케이가 곁에서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는 와이의 연락처를 받아 들고 다음을 기약했다.     

이틀이 지나고 나는 와이에게 연락했다. 근무가 끝나고 퇴근하는 와이의 시간에 맞춰 동네에서 만났다. 전부터 와이가 가보고 싶었다는 동네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일인가구가 됐다는 와이와 나는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전하며 회포를 풀었다. 그간의 안부를 챙기고 일인 가구가 된 소감을 확인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네가 사는 집에 한번 가보고 싶어."

대화가 무르익은 다음이다. 나는 와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 집? 글쓰기 딱 좋은 아파트지. 우리 집에 가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게 막 떠오를 거야."

"어떤 아파트길래?"

호기심이 발동했다. 글쓰기 좋다 하니 주변 환경이 좋은 아파트인가. 아님 시설이 좋은 아파트인가. 나는 내 멋대로 상상했다. 와이의 독특한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아보고픈 열망이 좀 있었거든. 그런 집을 찾았어. 나랑 동갑인 아파트. 그 집에 가면 스릴러 한 편은 뚝딱 나올 걸?"

"그렇게 나오면 내가 당장 가보자고 안 할 수가 없잖아."

내 머릿속은 이미 와이와 동갑인 아파트에 대한 내 상상이 가치를 치고 있었다. 스릴러 한 편이 뚝딱 나올 거라는 와이의 아파트가 무던히도 내 가슴을 두 방망이질 해댔다.

나는 고기를 굽는 와이를 보며 당장 가자고 재촉했다. 와이와 나는 먹기를 중단하고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자 그 사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와이의 집으로 가는 길을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십여 분을 걸었다. 그리고 와이의 집에 도착했다.

3층 내외의 연립과 빌라가 줄을 선 그곳에서 6층의 아파트는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다. 한옥의 ㄷ자형 구조를 닮은 무궁화아파트.

와이가 사는 아파트는 그 구조와 이름까지 클래식한 면모를 자랑했다. 와이와 동갑이니 72년생. 와이는 72세대가 들어선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인 6층에 살았다.

나는 와이를 따라 외부와 통해 있는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꼭대기 층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꼭대기 층이 좋아.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냥 좋아."

승강기 없는 아파트를 와이는 자신의 건강증진을 도모하는 집이라고 덧붙였다.           

내 눈엔 수상한 아파트처럼 보였다. 아파트 안의 조명도 으스스하게 비추는 데다가 비까지 흩날렸다.

내가 사는 옆 동네에 이런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다. ㄷ자형 아파트도 그랬지만 6층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범상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계단참에 이르면 벽은 뻥 뚫려 외부와 바로 연결됐다.

계단참에 서면 동네가 또 훤히 보였다. 옥상 난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비가 내리는 으스스한 밤. 아파트 계단을 오르자니 와이의 말처럼 글감이 절로 떠오를 듯도 했다. 집주인과 같은 해 태어나 함께 나이를 먹어간 아파트. 그리고 드디어 나는 와이의 집 속살을 눈앞에 뒀다. 6층까지 쉬지 않고 올라왔던 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비밀의 문처럼 문이 열리고 무궁화 아파트의 내부가 드러났다.




P.S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 [혼자는 천직입니다만]

차례는 있으나 연재의 내용은 순서와 다르고 내용도 제 임의로 선택해 올립니다.

이야기 전체가 궁금하시다면 출간본으로 만나보실 있습니다.

제게 행복은 좋은 것이거나 기쁨의 순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상태일 것입니다.

평온한 행복도 있지만 긴장된 상황의 행복도 있다는 걸,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상황에서의 행복도 있다는 걸,

행복의 그림자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살면서 알아갑니다.    

소설 같은 에세이, 그 안에 담긴

저만의 유별나고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추천해 드립니다.


하나 더, 사진은 이미지용으로 글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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