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연두

- 챗과 함께 그림 그리기

by 양수련

비가 그친 뒤, 세상은 잠시 숨을 고른다.

고요한 흙냄새가 올라오고, 나뭇잎은 아직도 방울방울 물기를 머금은 채 햇살을 기다린다.

봄비는 다른 계절의 그것과 다르게, 모든 것을 더 연두빛으로 물들인다.

막 틔운 잎사귀 하나하나가 더 투명하게 빛나고, 젖은 가지는 생명력을 한껏 머금은 듯 싱그러움을 뿜어낸다.

나무 아래를 걷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이 순간이 너무 완벽해서 깨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봄은 본디 연약한 계절이 아니다.

생명을 뚫고 나오는 힘, 추위를 밀어낸 기세, 메마름을 적시는 비의 결정체다. 하지만 비가 그친 직후의 봄은 부드럽고 유연하다. 마치 긴 꿈에서 막 깨어난 듯, 세상이 흐물흐물하게 살아나고, 바람 한 줄기에도 가지가 사뿐히 흔들린다.

젖은 도로를 따라 핑크빛 꽃무리가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면, 봄이야말로 세상의 가장 우아한 치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옆으로 나무들은 연두빛 잎사귀를 흔들며 웃고 있다.

연두색은 무언가 막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색이다. 짙은 초록이 되어가기 전, 아직 어린 빛깔이지만 오히려 그 여린 빛이 희망을 품고 있다. 이 계절의 공기를 들이마시면 코끝이 상큼하게 아리다. 풀내음과 흙냄새, 젖은 공기와 햇살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숲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음까지 씻기는 것 같다.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이 한순간이 휴식이 되고 여행이 된다.


비가 온다는 건 모든 것의 시작을 다시 쓰겠다는 신호다. 잊고 있던 감정이 돌아오고, 멈춰 있던 마음이 다시 움직인다. 창밖 풍경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나무들이 손을 흔들듯 나를 부른다.

도시의 소음도,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도 이 연두색 앞에서는 잠시 멈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나는 그런 봄이 좋다.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상쾌한 공기 속에 떠오르는 작은 용기.

비가 지나간 봄날, 연두새 나무 아래서 나는 오늘의 내 마음도 다시 연두색으로 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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