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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Apr 21. 2020

채워지고, 흐르는 데로

수 분 香

어릴 적 나는,

비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다.

작은 손을

오므려 받은 빗물이 아닌,


떨어지는

빗방울에 패인,

흙속의 틈새로

올라오는 수분 향.

그 낯선 향기를.


비릿하지만,

역하지 않고.

탁 한 듯 하지만,

맑은 기운.

무겁지만,

결코 부담스럽지 않고.

차갑지만,

더없이 포근하며.

낯설지만,

오래된 옷처럼 편안했던....


비가 오면.

비에 젖으면.

비에 묻히면. 비에 물들면....


오면.

가득 차 넘칠 준비를 하는,

그리움처럼.


젖으면.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던,

옛사람의 손길처럼.


묻히면.

두려웠던 아픔에,

걸어 놓은 빗장이 열리는 서러움을.


물들면.

모든 추억이 녹아내려,

또다시 그 맘에,

내 맘을 더해 숨었던 싹을 꺼내어 냄을.


비가 오면.

비에 물들면,

그대로 맡겨 놓으라 하고 싶다.


그렇게 채워지고, 흐르는 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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