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비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다.
작은 손을
오므려 받은 빗물이 아닌,
떨어지는
빗방울에 패인,
흙속의 틈새로
올라오는 수분 향.
그 낯선 향기를.
비릿하지만,
역하지 않고.
탁 한 듯 하지만,
맑은 기운.
무겁지만,
결코 부담스럽지 않고.
차갑지만,
더없이 포근하며.
낯설지만,
오래된 옷처럼 편안했던....
비가 오면.
비에 젖으면.
비에 묻히면. 비에 물들면....
오면.
가득 차 넘칠 준비를 하는,
그리움처럼.
젖으면.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던,
옛사람의 손길처럼.
묻히면.
두려웠던 아픔에,
걸어 놓은 빗장이 열리는 서러움을.
물들면.
모든 추억이 녹아내려,
또다시 그 맘에,
내 맘을 더해 숨었던 싹을 꺼내어 냄을.
비가 오면.
비에 물들면,
그대로 맡겨 놓으라 하고 싶다.
그렇게 채워지고, 흐르는 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