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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Apr 24. 2020

강아지 사촌

새로운 관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면

꽃잎의 화사한 가지 사이로, 화살나무의 푸릇한 신록 사이로,

벌써 몇몇 분의 주민들이 정자에서 어른거렸다.

우리 아파트의 애견을 키우는 몇몇 집은 매주 목요일, 차가 없는 외부 주차장 일부분에 오전 10시쯤 가림막을 하고

서로의 강아지들을 주차장 한켠에 풀어놓는 애견 놀이터를 개장한다.


오늘이 놀이터 개장날인 걸 모르는지 여느 때처럼  강아지는 외부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 화단을 연신 킁킁거리며 꽃놀이를 즐기듯 느긋하게 걷고 있다.

그 녀석을 바라보며 잠시 후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는 것 같다.

 

바로 그때, 생각이 사라지기도 전에  빠르게 달려가는 강아지. 아마도 친구들 소리를 들은 듯하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매주 보는 아주머니도 계시고, 아저씨도, 또 가끔 보는 젊은 부부도 보이고.

오랜만입니다. 별일 없으셨죠?


서로가 반가운 얼굴로 가깝게 맞이하면서 넉넉한 정자 안은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미 대 여섯 마리의 강아지들이 엄청나게 넓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따라가고, 달려가고,

던져진 몇 개의 공들을 가지고 물고 뛰며

한껏 흥에 겨워 놀고 있었다.

 

한 주민분의 입장 도움으로 어느새 합류한 우리 강아지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주인은 이미 다른 곳에 던져놓고 거의 무아지경의 모습으로 통통거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통 가족의 범위에서 친척을 분리하면

사촌관계가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크게 반론이 없을 것이다.

부모님의 형제, 자매들로 시작된 가까운 사이.

바로 사촌지간이다. 그만큼 여느 다른 친척들보다 왕래와 모임이 빈번하고 서로의 관심사를 깊게 들여다보고, 논의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웃사촌" 멀리 있는 친척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 그랬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런 이웃들이 많았었다.

그중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자리한 일이 있다면, 소풍 전날 옆집 아줌마가 사이다 한 병, 삶은 계란 몇 개를 가져다주시던 일. 입학 때면 공책 사라, 연필 사라시며 푼돈이지만 소중한 쌈짓돈을 아낌없이 손에 쥐어주시던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 행여 엄마가 없는 빈집에 있을라치면 어찌 아셨는지 집으로 데려가 밥을 챙겨주시고, 때론 씻겨주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아줌마.


 곰곰이 기억하지 않아도 너무도 많은 이웃분들의 고마움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짙은 그리움으로 되새김질되었다. 이런 모습들이 " 이웃사촌 "란 정겹고 소중한 이름이다.

느덧 이사온지 약 5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 역시 아파트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그렇듯이, 바로 옆집도 거의 모르다시피 지냈었다. 평소에 별로 마주칠 일이 없고, 혹여 엘리베이터나 단지 내에서 잠시 스치듯 지나는 이웃들은 그저 밋밋한 목례 정도로 인사를 나누고 지나치고,

설사 그 사람이 앞집 사람이라 해도 모를뿐더러, 길에서 만나도 그저 낯선 타인 일뿐, 공동체 안에 생활하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러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가끔씩 마주친 이웃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고, 무엇보다 서로의 강아지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면서 자연스레 대화로 이어지는 일들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나 같은 경우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늦게 귀가하면 새벽이라도 반드시 한 시간 이상 강아지와의 산책을 나간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나는 몰랐지만 강아지와 날마다 산책하는 아저씨로 이미 다수의 이웃들이 알고 있었고, 그중 몇몇 분들은 그 모습에 자신의 강아지에 미안함을 갖게 되면서 좀 더 자주 산책을 하게 되었다는 동기부여의 모습으로 비쳤다는 것은 좀 더 가까워진 후에 들은 말이었다.


녀석들이 가지고 놀던 공을 따라 서너 마리가 구석진 곳으로 우당탕 거리며 달려가니,

화살나무 가지 틈 속의 화들짝 놀란 어림 열 댓마리의 참새들이 마치 돌풍처럼 휘리릭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어떤 녀석은 입가에 거품을 내며 뛰어다니고,

어떤 녀석은 조그만 다리로 거의 구르다시피 다니고,

어떤 녀석은 잔디가 있는 끄트머리 주차장을 열심히 파고 있었고, 다른 녀석은 주인이 있는 쪽으로 달려와 친구들 노는걸 헥헥 거리며 보고 있기도 했다.


아무 이유가 없다. 어떤 목적도 없다. 그냥 한 무리의 강아지들이 마치 냇가의 피라미들처럼 이리로 휘~ 저리로 휘 거린다. 삶이 순수하다.


-참! 출장은 잘 다녀오셨나요?

-전에 몸이 좀 안 좋다 하셨는데 지금은 어때요?

-그날 다른 자동차보험회사로 변경한 거 잘했어요,        난 다 비슷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데요.

-여기 커피 한잔 더 하시죠. 제가 드립으로 내려왔는데 전에 보단 맛이 좋을 겁니다.

-전에 물어봤던 강아지 간식 업체 연락처 알아왔으니 알려드릴게요, 비싸지도 않은데 질이 좋아요.


직은 깊이 있는 대화나 의미 있는 행동에는 못 미칠지언정, 1년여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의 이웃 간의 대화가 차츰 그 넓이를 넓혀가며, 그 횟수 또한 촘촘해져 가는 즐거움을 찾아가는 중이다.


우리들의 공통점은 오직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강아지들로 인해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고, 더 나아가 공유라는 감정의 사치를 누리게 되는 것 같아 이 시간들이 때론 기다려질 정도다.


한때 미남의 대명사로 불렸던 "아랑 드롱"이란 배우는 재산을 모두 키우던 애견에게 상속하고 떠났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웰시 코키 30마리를 키우면서 어느 한 마리도 소홀히 대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미디어에서는 많은 양의 애견 관련 프로그램과 각종 동영상에도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의 애견 사랑은 넘쳐난다.

우리나라도 어느덧 1천만이 넘는 애견 가구가 있다고 한다. 애견인들 에게 있어서는 그들은 더 이상의 개나 강아지가 아니고 흔쾌히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같이 생활하는 동거견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반려견들은 어느새 자식과 같은 감정이입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한 반려견들. 이쯤 되면 애견들로 인해 우리네 관계 형성의 구조가 새롭게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반려견들이 매개체가 되어 숨어있던 선함이 깨어나고, 닫혀있던 마음이 열리고, 짐짓 굳어 있던 관계가 풀어지는 그런 모습들이 발현될 수도 있겠다는 조금은 섣부른 기대감도 생긴다.


나눔이 있는 삶은 행복하다. 선뜻 나누지 못하면서 우리가 잊고 있는, 잃어가고 있는 행복을 찾아서
항상 눈 위를 바라 볼뿐이다. 정작 내 눈 아래 있는 행복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 그곳엔 당신의 반려견이 있다 "


그들을 통해서 나눔을 하게 된다면, 깨우고, 열고, 풀면 우리에게 잊혀가는 전설의" 이웃사촌"이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훗날 신조어로 불리어질지도 모르는

 " 강아지 사촌 "의 관계를 시작점으로....



우리 강아지 이름은 쫑이다. 쫑 장군.

2013년 02월 01일 생 수컷 푸들.

색시 이름은 오름이. 역시 2013년 02월 01일 생. 푸들.

자견 3마리. 모두 암컷. 2015년 10월 생.

첫째 : 감자.

둘째 : 벨.

셋째 : 코코   

모두 모두 건강하게 잘 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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