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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May 12. 2020

야생동물 출몰지역

자연 수명대로 살아가길....

그 순간은 녀석의 生과死의 갈림길이었다


유난히 한산한 서부간선도로를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드문 드문 대형 화물차들이 몇 대 보일 뿐,

이 날따라 모든 도로가 오랜만에 여유를 넘어,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도로가 계속됐다.

새벽이 깊어가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 앞의 다리를 건너면 행담도 휴게소가 있다는 네비의 안내를 듣고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새벽 2시 45분. 바람도 별로 없고, 기온도

그리 차지 않은 적당한 새벽 기온에, 살짝 굳은 몸과 안전을 위해 두어 시간 정도 차에서 수면을 취하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표지판의 안내로 하행선 행담도 휴게소로 천천히 진입을 하면서, 평소의 취향과 달리 달달한 믹스 커피를 마실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진입로에 들어서 약 70여 미터를 곡선으로 주행하는데 갑자기 무언가의 움직임이 내 뻑뻑한 눈에 들어왔다.

'어? 뭐지?' 하는 말과 거의 동시에 '고라니 새끼잖아?'라는 말이 겹쳐서 나왔다.

한눈에 봐도 여리디 여린. 그리고 아주 작은 고라니 새끼가 고속도로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오다

나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동시에 밟은 브레이크와 멈춘 고라니 걸음.

약 30여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1~2초 정도의 시간은 그야말로 머릿속에 온갖 상황이 지나갔다. 재빨리 비상등을 켜고  이 황당한 순간을 고라니와 함께 서로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이쪽으로 가면 거의 죽을 텐데....' ' 어떻게 못 가게 하지?'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데...'라는 나의 생각과,

"저게 뭐지? 이상한 거네? "라는 고라니의 말도 들려오는 듯했다.


사실 도로는 물론, 산에서도 야생동물을

이렇듯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그 동물의 生, 死의 갈림길이란 극한 상황을 직접 마주한 적은 더더욱 경험치 못한 불편한 장면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동물들은 이렇듯 보호 본능 내지는 연상되는 상황에서 미리 갖게 되는 슬픈 장면은 없겠지만, 지금 내 앞의 이 어린 고라니는 외면과 컨트롤을 제대로 못한다면, 벌어질

그 후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 당황스럽고도 

슬픈 장면이 내겐 생소한 경직과 긴장감으로 지금을 마비시켜놓았다.

 

어린 고라니는 무언가 불편했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휴게소 방향으로 몸을 틀면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옳지! 그래! 돌아서가!' 나는 내심 녀석에게 속으로 큰소리치며 돌아서는 고라니에게 좀 더 재촉을 하였다.

내 말을 들었는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녀석은 작고 가냘픈 다리로 휴게소 방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어봐도 너무  어린지라 체감적으론 그냥 서둘러 걷는 정도의 속도감을 보였다.

천천히 비상등을 켜고 뒤를 따르던 나는 휴게소 진입램프가 길다고 몇 번이나 투덜거리며 최대한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녀석을 모는 기분으로 따라 내려갔다.


갑자기 멈칫하는 그 녀석을 보는 동시에 순간 맞은편 상행 코스로 올라오는 방향에서 자동차 불빛이 보였다.

어린 녀석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몸통을 한 바퀴 돌리고는 나와 불빛을 번갈아 본 후. 건너편으로 폴짝거리며 넘어가 버렸다. 맞은편 불빛을 등에 지고 다시 고속도로 방향으로 올라오는 녀석을 보고 급하게 차를 세웠다.

'안돼!' ' 그쪽은 안돼 이놈아!' 나도 모르게 차 안에서 큰소리로 말했지만, 녀석을 들을 수도, 설사 들었다 해도 알 수 없는 그냥 두려움이 배가 는 큰 소음이었을 것이다.


부~웅~하고 어린 녀석을 본 건지. 못 본 건지 빠르게 지나치는 자동차에 녀석은 흠칫 거리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제발. 부디.... 아무 쪽에서나 차들이 오지 말길 바라는 기도 아닌 기도를 짧은 순간에 수없이 했다.

꼼짝 않는 녀석과 작은 길 건너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중, 혹여라도 어느 쪽에서든 차가 올라치면 수습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빵! 하고 짧은소리를 내며 창문을 조금 내렸다.

결과는 원하는 방향을 낳았다.


주춤했던 녀석은 다시 내 앞쪽의 대각으로 건너와 휴게소 방향으로 아까보다 좀 더 빠른 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거의 램프 끝에 닿을 무렵, 녀석은 쪽으로 껑충 거리며 무언가를 넘으려는 시도를 두어 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당연히 차를 멈추고 기다렸다. 넘기만 하면 숲이다. 정말 응원했다. 간절하다는 만큼 응원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녀석이 넘기에는 역 부족인 높이였다.

거듭 두어 번 실패를 끝으로 다시 앞으로 달렸다.


드디어 휴게소 광장 초입. 주유소를 끼고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다 그래도.' '정말 잘했어' ' 일단 도로 쪽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어. ' '너도. 나도.... 애썼다 이 녀석아'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주유소 내에서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숲은 녀석의 키보다 까마득하게 높은 담 너머에 있었고, 촘촘히 세워진 철망 사이로 보이는 숲은 아무리 어려도 틈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왜 이렇게 다 막아 놓은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도

막아서 안전을 최소한 보장한다는 썩 개운치 않은 모순이 존재한 곳이었다.

주유소 뒤편 부분으로 이리저리 활로를 찾기 위해 움직였지만, 녀석이 나갈 곳이라고는 내 눈에도, 녀석의 눈에도 전혀 보이질 않았다.

지친 건지 생각하는 건지 녀석은 한자리에 우두커니 10분을 넘기며 서 있었다.


주유소 작은 부스 안에는 분명 한 사람이 있는데 꼼짝을 안 하고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 조는 듯해 보였다. 나는 혼자서 말했다.  

'제발 깨지 말고, 나오지도 말고 그 자세를 그대로 하고 있길 바랍니다'

 

행여 움직임에 놀랄까 봐, 그래서 또다시 고속도로 쪽으로 움직일 까 봐, 녀석의 반대쪽으로 내릴 수 있게 주차를 하고 조용히 내렸다.

아직도 꼼짝을 않고 제 자리에 서 있는 고라니가 갑자기 슬퍼 보였다. 어려도 너무 어린 녀석인데. 좀 큰 녀석이었으면 그래도 자기가 나왔던 곳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어린 나머지 생각 없이 길 따라 킁 킁 거리며 왔다가,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한다니. 가슴이 메이고, 쓰려왔다.


아무리 둘러봐도 녀석이 들어갈 만한 곳은 없었다. 녀석을 어쩌면 좋지....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옆으로, 아마 2미터 정도 거리 내 옆을 독특한 발굽소리와 함께 후다닥 지나는 녀석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다 놀란 것 도 잠시.

'어라' 저쪽은 어딘데 그쪽으로 가지?'

좀 전 주유소의 반대 위치에 또 다른 주유소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그쪽을 향해 나름 빠른 걸음으로 달리는 가 싶더니, 오른쪽 방향으로 다시 비스듬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 시야엔 어둠만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열심히 따라가 봤지만 이내 어둠이 바싹 내린 잘 보이지 않는 방향이었다.


담배 한 대 물고 한동안 그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20여분이 지나도록 지켜봤지만 녀석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곳이 어딘지, 녀석은 어디로 간 건지 이젠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어둠 속 일뿐....


그냥 혼자 되뇌었다. ' 그래도 도로 쪽으로 안 간 게 얼마나 다행이야. 잘했다 이 녀석아. 다음에는 절대 도로 쪽으로 가지 마라' 보이지 않는 위험은 예상되지 않았기에 도로라는 명확한 위험을 피한 것에 감사하면서

휴게소 내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인 주문을 하면서도 메뉴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머릿속엔 아까의 그 녀석과 그 방향이 어딘지 궁금해져만 갔다.

국밥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앉는데 저쪽에서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나는 성큼 거리며 다가가 아까의 상황을 간략히 말해주고 고라니가 간 방향이 어디인지 혹시 아시느냐 물어봤다.

" 여기 고라니 많이 살아요.... 그쪽은 들판으로 가는 길인데.... 잘 간 것 같은데요. 뭘 그렇게 까지 신경을 쓰세요. 그런 일 여기 자주 있어요 " 다반사처럼 말하는 것도 기분 나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잠시 수면을 위한 포만감을 노린 국밥이었음에 불구하고,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다. 그냥 밥을 넣으면서도, 씹으면서도 실실 거리며 누가 보면 한번 더 볼 얼굴을 해가며 밥을 먹고 있었다.


흡연구역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눈으로 똑똑히 들로 간 것은 보지를 못했다. 단지 방향을 말해 그쪽이 들판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안도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위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녀석이 죽을 때였다면 아마도 진입램프에서

몇 가지 상황을 맞이하며 결국에는 도로로 갔을 것이라고"


수십 년간, 수 없이 많은 도로를 지나면서 "야생동물 출몰 구역"이라는 표지판은

셀 수없이 많이 봐왔었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들을 산과 들. 여행길을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야생동물과는 맞닥뜨려 본 경험이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십 수년 전, 도봉산에서 사패산 방향으로 가던 중, 거칠게 나뭇가지를 흔들며 내 쪽으로 달려오는 무언가에 혼비백산에 가까운 놀람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동물을 오소리였었다.

그저 옆으로 지나는 동물이었다.


그러한 내게 오늘. 이 새벽에, 낯선 이 장소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짧은 시간에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많은 감정과 생각을 일으켰다.

마치 나의 세계, 뒷문에 숨겨졌던 또 다른 생명들의 모습에서 애상감과 소중함. 그리고 자괴감마저 느껴지는 내 생의 처음 갖는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분명 이종의 생명들에 관한 지금까지 보다는 깊이 있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이제는 표지판을 무심코 지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어떤 경고의 안내방송보다 주의 깊게 들릴 것이다.


" 야생 동물 출몰 구역이니

                              조심 운전하시기 바랍니다. "


---- 저의 모든 글은 스마트 폰 최적화의 배열로 맞춰졌습니다. PC 화면으론 다소 불편한 점을 양해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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