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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May 14. 2020

초보 중년

등 뒤가 허전한 낯선 시간들

하루하루 봄이 늙어간다. 매화가 지고, 목련도 지고.
거리 곳곳 화려하게 수놓았던 벚꽃도 누렇게 늙어
어느새 신록의 자리를 허락했다.


명퇴나, 정년퇴직이나,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일선에서 한발 어지게 되는 50세 이상의 젊은 아저씨들은 가장 먼저 오는 의문이

'나는 아직 거뜬한데'라는 현실 부정이 찾아옵니다.

더구나 그 정도의 연륜을 쌓고 퇴직한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 내의 한자리를 했던 사람들이

꽤 많이 있을 겁니다.


그에 따른 존재감과 자부심 등이 아직 채 물러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 그동안 애쓰셨으니 이젠 그만 쉬면서 즐기십시오 "라고 하지만,

" 이젠 거의 다 한 것 같아 싱싱한 사람으로 대체하겠으니 의자 좀 내놓으시죠 "라고 들리기도 합니다.


"개인은 사라져도, 법인은 계속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시로 느꼈던 감정의 문구였습니다.

조직원은 회사를 위해 그야말로 매번,

매 프로젝트마다 모든 걸 쏟아부으면서

근무를 합니다.

그 결과로 인해 인정받고, 승진하고. 연봉도 상승하면서 점차적으로 그 위치가 달라집니다.


그게 다 였습니다. 크게 보면. 계속 그렇게 돌다가 어느 순간 뫼비우스의 띠가 끊어져 버립니다.


"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축하(?) 해 주면서, 선물 주면서 뭐 그렇게....

정말 이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성취감보다는 허무함을 더 느끼면서 마지막으로 회사 문을 나섭니다.   


그렇다 한들 늙어가는 봄이 어디 쉽게
삶을 다 하겠는가
비록 누런 꽃잎들을 흔적으로 남겼지만
다가올 다른 계절을 견디는 추억으로 회상하며 나무는 또다시 꽃잎을 갈무리한다.


등 뒤의 든든했던 언덕이 사라진, 오롯한 개인이 되었을 때. 주위의 시선이 변하고, 대접이 바뀌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달 정도는 그간 잊었던, 잃었었던 것들을 하고, 보고, 챙기면서 나름 바쁘게 지나갑니다만. 그것도 오랜 루틴을 가졌던 사람들에겐 어느 날부터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때가 잦아집니다.

바로 최대의 고비가 시작되는 때였습니다.


"잉여인간(剩餘人間)" 평소에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화두를 앞에 세워놓직시하게 됩니다. 이놈 만만치 않습니다. 시퍼런 눈빛으로 깜박임도 없이 나를 조롱하는 멸의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이놈의 집요함에 수시로, 때때로 지금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큰 몸살을 앓게 됩니다.

정말 저의 혼을 쏙 뺄 정도의 앓이를 했습니다.       


단순히 준비만 한다고 해서 한 겨울 잠깐 휙 지나는 바람으로 만들지는 못 할 것입니다.

겪어보니 그랬습니다.


제일 먼저 자존감을 형편없이 패대기치더군요. 누가?  스스로가.

아직 여물지 않은 사고(思考)의 틈을 비집고 나와 수시로 나를 흔들고 넘어뜨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나름 수양을 한다고 했었지만,  결국은 건성으로 맞이 한 것 같아 후회가 많았습니다.


주위의 도움도 많이 필요했죠. 특히 아내나 아이들이 많은 힘이 돼 주었습니다.

 

" 관대함이 부족했었습니다 "


나에게 너그럽지도, 친절하지도 않았습니다.

때론 내면을 살피는 관조(觀照)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방식대로 지냈습니다.

분명, 전과는 다른데 전과 대등한 것을 끊임없이

요구한 것입니다. 

마음이 현실의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 거지요.

낯선 곳에 떨어진 꽃씨는 결코 두려워하는 법이 없이 조용히 한 곳에 내려앉는다.


나무도 새로운 토양에 적응하려면 몸살을 앓더군요. 하긴 전과 다른 생경한 환경과 흙인데 오죽하겠습니까.

한 며칠 시름시름 거리다가 이내 풋풋하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걸 보면 참 대견스럽습니다.


청춘은 성대한 만찬의 자리에서 즐기는 파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의 갖가지 요리와 성찬들을 즐겨가며 역동적이고도 기세 등등하게 살아왔었습니다. 때론 자극적인 것들을 찾고, 즐거운 것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더군요.

담백한 것이 탈이 없고, 즐거운 것은 한시적이지, 결코 행복은 아니라는 걸 깨닫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요리보다, 아내의 뚝배기 된장국의 맛과 깊이가 더 소중하고 행복하고, 보이기만 했던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것들에  본질의 맛을 알게 되는 이 시절이 더욱 풍성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야 외향과 본질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끊임없이 지평(地平)만을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내 가까운 곳이 내가 설 자리임을 무시했던 거죠.


청춘  이미 뿌려봤던 씨앗들인데 이젠 조금만 뿌린다고 속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익숙하지 못한 씨앗들의 안착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진다면, 새롭게 꽃씨를 뿌려도 조용히 원하는 곳으로 찾아가, 기대하는 싹이 돋을 것입니다. 


지금의 모든 것은, 특히 초보 중년에 들어서

이들은  "나의 대한 관대함"으로

출발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확장만이 존재의 가치를 느꼈던 지난날은 이젠 잊고, 축소하며 응축되혜윰있는 삶의 여러 모습들을 들여다보며  삶을 살아갈 생각입니다.


천천히 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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