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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May 26. 2020

배짱 있게 소설 시작하기

담대한 첫 문장

"정작 꼭 필요할 때 기억이 안 나. 왜 그럴까?"


본디 기억이라는 것이 날마다

친절한 봉사정신으로, 주체인 사람을 위해

언제 어느 때나 정확한 스폿을 찍어주며

무한한 봉사를 하는, 

그런 녀석이 아닐 것이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가끔씩 잊고, 어떤 것은 까마득히 잊고.

때로는 설렁설렁하다가도,

가끔 한 번 빵! 하고 기억의 수면 위

물보라를 보란 듯이 휘몰아쳐 주며,

주인이 원하는 곳으로

자유로운 유영을 선물하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인 경우는 허다하게 많다.

전두엽 깊이 자리한 해마의 발톱에 잡혀

신피질의 구석에서, 아예 햇빛 볼 생각 없는 굼벵이의 모습으로 웅크리고만 있기도 한다.  


한 5년여쯤 됐나? 

몇 번 족히 봤을 토탈 리콜이란 영화를,

그날도 그냥 시간을 보내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있던 중에,

문득 리콜사의 가상 기억을 주입받는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에서,

누군가 기억을 강제로 추출당한다면?

 

그 사람의 기억은 당연히 한 부분 또는

전체의 기억이 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멍청하게도 깊이 해 본 적이 있었다.


츠암내. 나이 50을 넘어서

그런 초딩적인 생각으로 몇 시간을 보내다니,

하는 당시헛웃음을 쳤던 기억을 

지금도 갖고 있다.

그때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건강 상의 영향이었는지 몰라도,

유난히 기억되지 않는 나의 일상이 늘어난 때였기에 그러한 생각이 더 했는지는 알 수없다.

그런데.

얼마 전 그때의 기억이

우연히 떠 올라 버렸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평소와 다름없이 쫑이와 산책을 하다가

무심코 떠 오른 생각.

하지만 유치한 그 생각이 이상하리 만치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사색이 들어올 틈을 내어 주질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산책로 벤치를 찾아

쫑이를 무릎에 앉혀놓

가만히 더듬어 들어갔다.

"그러긴 했는데. 그때 기억이

잘 나지 않은 것들의 이유가 혹시

누군가 나의 기억을 내가 모르는 새,

강제로 추출 해 갔다면..."


생각이 그쯤에 이르자

기억이 나지 않은 때를 기억해서,

기억을 강제 추출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자. 하는 마음이

심하게 요동쳐 왔다.

황당했지만 신선한 기분 또한

느꼈던 순간이다.


 츠암내. 초딩적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소설이라고는 당연히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장르였고,

할 생각도 없었던. 그야말로 유명 셰프에게 대접받는 요리였지,

직접 재료부터 완성까지 만들어내는

덜 떨어질 요리를 만들어 가는

그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장르의 작업이 낯선 것은

당연하였으니 불편한 것 또한

사실이었지만 이 또한 어찌하리.

하자고 마음이 동하였으니

해 보는 것이 옳다는 무지의 겁 없는 용기.

살짝 긴장의 끈이 조여짐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는 것도,

꼭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편하게 가자.

까짓것 이런 류의 경험을 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니까.

기존 소설 작가 분들이나,

역량 는 다른 작가 분들의 시선에서는

쩔쩔매는, 어쩌면 포기하는

내 모습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준비를 하지 그랬어하는

위로와 응원의 짧은 미소를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만하지....라고.

 

내 생각도 그렇다. 주로 다루는

산문 형태의 글과는 다른.

결이 다른 스토리 구성의 시작부터

진행되는 데에, 사실 좀 머리가 아팠다.    

하. 지. 만! 그. 래. 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만 하면 공상이요, 준비가 없으면 허상이요, 실행이 없으면 망상이라.


나는 생각도 준비도, 

실행도 해 볼 요량이었다.

그래서 준비를 해 갔고,

드디어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소설이 될 단어를 입력했다.

솔직히 그 순간의 기분은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누구에게의 자랑이 아닌, 

오롯이 나에게 자랑했고,

나를 위해 응원한 색 다른 감동이었다.

나는 이미 시작을 했으니

끝을 맺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난 그런 사람이다.


몇 개월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그냥 쓰고 싶어 질 때 쓰는 편안한 접근을

해 갈 생각이다.

단지. 하나만은 명확한 목표를 잡고 있다.


내 글쓰기의 인생에 소설 한 권을 만들어 냈다.라는 


오늘 이후 어떤 날에 가질

풍요로운 즐거움. 그것이다.

나의 상상력을 직시해 볼 기회이면서,

끈기 또한 가늠해 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

또한 시작의 근원 중 하나다.


천천히 가되, 끝까지 가는 모습을

스스로 응원하면서, 문장의 단락을 맺지만

눈은 커서를 응시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스킬이 아닌 배짱이 필요해.

망설이면 가장 먼저 포기라는 놈이 올 테니.

시작의 최악은 멈춤이지만
포기의 최악은 좌절이니까....

채 다듬어지지 않은 내용의 한 부분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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