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 기 홍 Apr 29. 2020

베란다는 행복 천지다

나 하나 안 바빠

그루잠과 기억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그 사이를 좁히느라 애썼다


뭐였지? 분명 뭐가 있었는데....

침대에 걸터앉은 채 창밖을 보며 아직 깨어나지 않은 잠을 품고 생각하고 있었다.

새벽녘에야 겨우 든 잠을 강아지의 꼼지락 거림에 일어나 앉기는 했지만 당최 명확하게 떠 오르는 것이 없다.


그렇게 5분여 가량 앉아있다 포기하고 주방으로 가 물 한잔을 크게 받아 마셨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선물해준 작은 에스 프래소 머쉰에서 커피 내릴 준비를 하면서,

도대체 뭐였더라....

기계 스위치를 ON으로 켜고 주방 벽장을 열어 커피를 커내는 일련의 과정을 준비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무엇의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 다니고 있었다.

쪼로로록~ 에스프레소가 나오면서 덮여가는 크레마는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붉은 황금색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날마다 머쉰으로 내려먹지는 않는다. 그거 은근히 뒤처리가 번거로워 그냥 드립을 해서 마시거나, 그것마저 귀찮아지면 일회용 원두 스틱커피를 물에 타서 마신다.

이런 모습들이 아침에 움직이는 나의 루틴이기도 하다.

커피를 들고 베란다 쪽으로 움직이면 강아지 역시 꼬리를 살랑 거리며 앞서 베란다 의자로 향한다.    


거리의 바쁜 차들이 보이고, 그리 멀지 않게 남산타워도 보인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관악산 능선도 보이고,

좀 더 멀리로는 청계산 자락도 보인다.

날이 좋은 날이면 그것들을 보는 맛도 꽤 쏠쏠한 즐거움이다.

베란다를 이곳저곳 킁킁 거리며 다니는 강아지를 보면서 날마다 뭐가 그리 궁금하지 하는 생각을 하며 화분을 바라보는 순간 머릿속 맴돌던 물음표가 발딱 고개를 세웠다.

" 아~ 화분에 물 주라고 했지 "


종종 기억하려 해도 맴돌기만 하는 경험들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답답함과 아득한 기억의 부재를 탓하며 하루 종일 체증이 있는 것인 양 불편했던 적이 있었으리라. 다 나이 탓이야라는 자신이 처방한 소화제를 먹기 전에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던....

이 일 같지도 않은 일들을 반드시 날마다 해야 한다면....  


모두가 출근하는 우리 집은 나 빼고 다들 바쁘다. 아니 강아지 쫑이 녀석도 하나 안 바쁘다.

대체로 8시 정도 일어나서 식구 중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하고 아까의 그 루틴을 반복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쉰지도 벌써 3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허리 디스크 및 관 협착으로 인해 마음껏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다. 허리 시술을 받은 지 1년 조금 넘었고, 각종 스트레칭과 무작정 걷기를 시행하면서 체중도 약 10kg 이상 빠지고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그렇다고 비만은 아니었다. 단지 조금 더 빠져도 좋을 것 같은 몸이었지만 걷기가 이런 효과를 낼 줄은 상상도 못 한 결과물이었다. 6개월 이상. 하루 5km 이상 걸어보면 요요 없는 완벽 살 빼기. 확언한다. 시작?

하긴 이 바쁜 세상에 말이 쉽지, 여하튼 그렇다.


다들 출근을 하면 내가 하는 일들을 천천히 시작한다.

각 방의 침구정리. 그리고 집안 청소. 세탁기 돌리기. 이것들이 나의 주된 업무다.

그 외에 가끔씩 하는 일들은 시장 봐서 몇 개의 나물을 무친다거나, 요리(?) 수준의 이벤트 음식을 한다거나, 밥을 하고, 때론 설거지도 한 번씩. 그런데 이러한 일상의 일들을 반복하다 보니 정말 그렇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 정말 해도 해도 티가 안 나는 일이지만, 안 하면 바로 티가 나는 게 살림이다 "

하물며 독박 육아나 살림을 하는 사람들은 그 노동력의 고됨은 결코 다른 것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자드락길은 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내는 꽃을 좋아하고 또 가꾸기를 좋아한다. 타샤 투더는 저 지구 반대편의 버몬트에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정원과 베란다의 차이일 뿐 꽃과 나무, 식물들을 대하는 마음은 내 아내의 편을 들고 싶다. 내 아내니까.

우리 집 베란다는 역 기억자의 모양을 하고 있다. 넓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협소한 공간도 아니다.

그곳에는 거의 10년은 족히 넘은 높이가 40cm

내외의 인삼 팬더가 대장 노릇을 하면서 나무와 꽃, 식물 종류가 어림 30여 가지 정도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기억력도 없고, 어려운 건 체질적으로 거부하는 지적 능력의 소유자인 나로서는 그 하나하나의 이름은 그냥 꽃이거나 나무다.

아~ 며칠 전에 아내와 함께 종로 꽃시장에서 새로 맞이한 녀석 중에 조팝나무가 있다.

가늘고 긴 가지에 하얀 꽃이 점점이 붙어 있으며 화사한 모양새를 한 마치 눈송이 같은 녀석.

원래의 이름은 조밥나무라 한다. 강한 발음으로 인한 조심스럽게 요구하는 조팝나무로 바뀌었다.


꽃의 이름은 수선국이라 불린다. 전쟁에 나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덤가에 난 나무를 캐어와 집에서 정성스럽게 아버지 대하듯 돌본 딸의 이름인 수선이라는 이름에 유래되어 그 나무의 꽃을 "수선국"이라 부른다 한다.

 

여하튼 좁진 않지만 이러한 식물들이 줄지어 구석까지 파고들고, 창가 위쪽의 공간마저 거치대를 이용해 점령한 탓에 작은 탁자 놓는 것은 언감생심, 가까스로 의자 하나만 허락했다.

이런 사정으로 그 사잇길을 걷는 모양이 산행길 자드락 길을 걷는 것과 규모의 차이 일뿐 자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

건강하게 보내는 다정한 이야기.

시원하게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오전 햇살을 즐기고 있던 수국이 털털거리며 옷에 묻은 건조를 털어내고, 나른하게 졸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라넌 큘러스는 온몸을 떨며 몸통마저 흔들어댄다. 조금 센가? 하며 수압을 조정하고 이내 대장인 인삼 팬더를 향해 조용히, 다소곳 한 자세로 꿀 같은 수분을 심어주었다. "도대체 엄마가 신경 안 쓰면 그냥 놔둘 인간이야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미안하다. 날마다 보면서 이쁜 줄만 알고, 기분만 좋아할 줄 알지 정작 돌봐줄 생각조차 하지 못해 미안하다"

좀처럼 기억 못 해준 그들에게 입 밖으로 연신 사과의 말을 전하며 하나하나 꼼꼼히 수분을 심어 나갔다.

화분 물 주라는 말조차 기억을 못 했던 좀 전의 기억력은 어느 화분은 물을 얼마큼, 어느 화분은 이렇게, 다른 화분은 저렇게 줘야 된다는 세세한 기억마저 다시 찾으니, 나는 스스로 대견한 마음으로 순서에 따라 호스를 가져갔다.


"고맙다 애들아. 너희가 있어서 아침을 맞는 첫 모습이 푸르고 화사해서 좋았던 건데, 정작 너희들의 고마움은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보질 못했구나. 더욱이 물을 주라는 엄마의 말 마저 그냥 쉽게 잊어버리는 내가 참 미안하다. 다음부턴 내가 엄마한테 먼저 물어서 너희들의 건강을 보살펴 주마. 미안하고 고맙다 얘들아"


지난겨울 나무 하나를 부분 동사시켜 까맣게 죽인 일이 있었다. 원인은 내가 조금 열어놓은 창문이었다.

살짝 열린 창문을 통해 냉기가 들어왔고, 그 냉기가 침투한 부분의 몸통부터 위 부분의 줄기, 잎사귀들 모두 까맣게 죽고 힘없이 잎새를 떨군 일이 발생했었다. 나무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녀석은 연중 푸르고 탐스런 입들을 끊임없이 유지하고, 피어내며 베란다 한 부분의 청정함을 유지시키는데 제 몫을 다 하던 녀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느 때처럼 그들을 관리해주려 들어간 베란다에서 탄식이 들렸다.


" 어머 얘 죽었나 봐. 까맣게 얼었네. 뭐야... 창문 열어놨었어 당신? " 탄식 소리를 듣고 생각 없이 다가서던 나는 흠칫 거리며 변명을 했다. "아니? 어... 엉. 조금씩 잠깐잠깐 열었었는데 왜?

" "얘가 얼었잖아. 이것 봐" 하며

 힘 없이 떨어진 잎새들과 색 바랜 몸통을 가리키며 나를 흘겼다.

"에이. 설마 그런다고 죽나? 벌써 몇 년을 지냈는데 이번에 죽는 이유가 뭐야?"라는 변명이 끝내기도 전에,

"위치를 옮겼잖아. 전에는 방 쪽으로 있었고, 얼마 전에 창가 쪽으로 옮겼는데 위치가 다르잖아"


논리적이다.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직접적인 냉기와 중화된 냉기가 끼치는 영향은 그들의 연약한 삶과 죽음을 가를 수가 있었다.

겨우내 아내의 원망을 들어가며 보냈다. 무려 100일 정도가 됐을 것이다.

그 말만 나오면 나는 미안했다.

대상은 아내인지, 그 나무인지 솔직히

불 분명했었다.


그런 그 녀석이 언 부분을 과감히 외과적 수술을 한 아내 덕인지, 잘린 바로 밑 부분과 또 옆 부분에서 얼마 전에 파란 신록이 올라왔다. 햐~ 고 놈 참 예쁘네 하고 수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고맙다 요 녀석아.


소중한 것은 꼭 물질만이 아니다. 너무도 진부한 말이지만 단지 진부하단 얘기로 치부하고 성찰하지 않는 일이 내게서는 많아도 너무 많다.

가슴으로 말하는 언어와 몸으로 보이는 행동의 괴리를 좁혀야 한다고 늘 머리는 채찍질하지만,

이놈의 현실이란 공위에선 언제나 기우뚱거리기만 할 뿐 내려서질 못한다.


보였지만 존재감을 몰랐던 베란다 안의 또 다른 가족들. 그 안에서 던져졌던 수많은 언어들.

그저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묻어버린 행복의  단초들에게 내가 던졌다. " 나 하나 안 바빠 이젠 " 


     " 중년이 되면 행복의 조건이 바뀌고, 즐기는 방법이 바뀌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광활한 우주를 돌아 돌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