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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May 16. 2020

2020. 5.16 설렁탕집

과하게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슬거리는 둘레길을 

걷고 나니 이른 아침은 지났네.

오솔길 끄트머리 커다란 나무 아래,

됨직한 기와집 한 채

바쁘지 않은 걸음에 닿은 곳은

눅진한 냄새의 설렁탕집.

메뉴는 그닥이지만 그래도

코로나 소비해보자며 들어갔네.


주문하니 양파절임, 깍두기.

그리고 널브러진 김치 한쪽.

절여진 김치만큼 미간도 주름지고,

보기 좋은 게 좋은 건데.


고기 취향이 아닌 것은

건져두면 되겠지만,

상차림은 아프네.

김 오른 뚝배기와 파 담긴 또 뚝배기.

똘똘 뭉친 국수가락.


기왕이면 맛나게. 후추 뿌리고,

파 듬뿍. 젓가락으로 휘휘 젖고.

밥뚜껑에 건지려니 예상한 고기는

다 어디로. 떡국떡만 서너 개.

작심하고 훑어보니 귀하디 귀하신

고기 용안 보여주시는데.


그래도 그렇지 달랑 이게 뭣인가.

고기 두 점인가, 메밀 수제 빈가.

은근한 심통에 양에 대해 물으니,

특에는 다섯 점이니 별 수없다는 대답.


특을 위한 보통의 희생인가,

보통이 다섯 점에 건방 떨면

특이 자존심 상해 뚝배기 깨질까 그런가.


구천 원의 가치가 이렇듯 가볍다면

만 이천 원의 특 또한 제 무게는 아니리니,

같은 입장 사장님들 다 이유가 있을 거라

두둔할 지라도. 아닌 건 아니라.


만원이 아닌 것에 감사하네,

만원에 먹었다면 내 울화(鬱火)만

먹고 나왔으리.


오솔길 끝나는 끄트머리 집.

수양하며 걸어온 내 심통 소환하네.

차마 공치란 말은 못 하겠다만,

그렇다고 잘 먹었단 의례적 말도 못 하겠네.


주인은 열심히 문 밖만 바라보지만,

나는 문 안의 빈 의자들만 바라보았네.


그래도 기왕이면 잘 되. 었. 으.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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